1936년 11월 시 전문지 ‘시인부락(詩人部落)’ 창간호가 나왔다. 편집인 겸 발행인은 21세의 젊은 시인 서정주였다. 판권에 적힌 그의 주소는 서울 통의동 보안여관. 당시 서정주는 여관에 머물며 시를 쓰고 있었다.
보안여관은 종로구 통의동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경복궁의 영추문(迎秋門) 바로 앞, 청와대 가는 길목이다. 하얀 바탕에 파란색 글씨로 된 보안여관 간판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욕탕 표시도 정겹다. 서정주 시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숙박공간이 아니라 전시공간이라는 사실.
내부로 들어가면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미술 전시의 효과를 위해 천장을 드러내고 목조 가구(架構)를 옛날 모습 그대로 노출시켜 놓았다. 위아래로 둥둥 떠다니는 듯한 목조 뼈대, 촘촘하게 얽혀 있는 전선과 애자들, 중간중간 속을 드러낸 누런 흙벽, 빛바랜 옛날 벽지, ‘객주 구수명’이라 쓰인 일제강점기 상량문…. 창문 밖 영추문 너머로 쫙 펼쳐지는 경복궁 풍경 또한 매력적이다.
보안여관은 1930년대 초에 생겼다. 서정주의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자 지방에서 상경한 작가 지망생들이 보안여관에 장기 투숙하며 ‘문청(文靑)’의 꿈을 키웠다. 1960, 70년대 통행금지 시절엔 청와대 직원들이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기도 했다. 문화공보부 공무원이었던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도 보안여관에서 새벽까지 연설문을 작성한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엔 경복궁에 청와대 경호부대가 주둔했다. 그래서 보안여관은 군인들의 면회 장소로 인기가 높았다. 면회객이 몰리는 날이면 여관에 통닭 냄새가 진동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경복궁에 있던 1980년대, 밤늦게까지 전시 준비를 하느라 집에 갈 수 없었던 직원들은 이곳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보안여관은 그렇게 2004년까지 여관으로 사용되었다.
보안여관은 2007년 일맥문화재단이 인수해 갤러리로 쓰고 있다. 최근엔 보안여관과 연결되는 신관 건물을 짓고 숙박 및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최성우 일맥문화재단 이사장의 말. “1930년대 시인부락의 기억을 불러내고 싶었습니다. 여관을 운영했던 주인들, 여관에 묵었던 사람들의 기록과 스토리를 계속 찾아내야지요. 여기에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덧붙여 보안여관의 역사를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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