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 때문에 짜증난 일이 있는가. 짜증난다는 것이 마냥 나쁜 일만은 아니다. 맞춤법에 대한 관심이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일도 많다. 짜증스러움을 ‘무슨 맞춤법이 이 모양이야’와 같은 불만족으로 만들지 말고 ‘왜 맞춤법을 이렇게 정했을까’와 같은 순수한 궁금증으로 바꾸어 보자. 그래야 이 궁금증을 푸는 과정이 맞춤법을 이해하는 통로가 된다.
우리를 짜증나게 하는 대표적인 맞춤법이 ‘며칠’이다. 그 짜증을 순수한 질문으로 바꿔보자. 왜 맞춤법을 이렇게 정했을까. 짜증을 이런 질문들로 바꾸어야 맞춤법을 이해하는 길로 만들 수 있다. 먼저 짜증 너머의 욕구를 짚어보자. 우리는 이 단어를 어떻게 적고 싶었던 것일까. 이 달리 쓰고 싶은 욕구 때문에 불만이 생기고 짜증이 생기는 것이니까.
우리는 ‘며칠’을 ‘몇일’로 적고 싶어 한다. 질문을 더 이어 보자. 그렇게 적으면 무엇이 좋은가. 우리는 ‘며칠’이라는 단어를 단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단어는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까. 그래서 ‘며칠’을 떠올리면서 이미 ‘몇월 몇일’의 짝을 생각하게 마련이다. 이 ‘몇월 몇일’은 ‘몇’을 중심으로 ‘월’과 ‘일’이 의미상의 짝을 맞추어 의미 파악을 쉽게 한다. 그래서 이렇게 적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짜증의 원인이다.
맞춤법을 정하는 사람들도 이 점을 잘 안다. 그런데 왜 ‘며칠’을 맞는 표기로 정한 것일까. 언어는 음성과 의미로 이루어져 있다. 앞서 본 것은 의미에 관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음성, 즉 말소리에 어떤 답이 있는 것은 아닐까. 발음해 보자. 우리는 ‘몇 월 며칠’을 ‘며) 며칠’이라 발음한다. ‘몇월 몇일’이나 ‘몇 월 몇 일’이라고 써 놓고 발음해도 마찬가지다. 사실은 우리가 ‘며) 며칠’이라 발음하기에 ‘며칠’이 맞는 표기인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규칙이 맞춤법에 적용되었다는 의미다. 왜 그런가. 관련된 다른 단어들이 실마리를 준다.
‘꽃 안’을 발음해 보자. 누구나 이 단어를 ‘꼬단’으로 발음하지 ‘꼬찬’으로 발음하지 않는다. ‘꽃’과 ‘안’은 각각 하나의 단어이다. 앞말의 받침인 ‘ㅊ’이 ‘안’의 빈자리로 이동해 ‘꼬찬’으로 발음하면 ‘안’의 의미가 훼손된다. 우리의 머릿속 규칙은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꽃’은 혼자 있을 때의 발음인 ‘+’으로 변한 이후에야 ‘ㄷ’을 이동시킬 수 있다. 그래서 ‘꼬단’으로 발음하는 것이다.
이것은 ‘몇 월’의 발음 원리와 같다. ‘며)’의 ‘ㄷ’에 주목해 보자. 그런데 ‘며칠’은 어떤가. 우리는 이를 ‘며딜’이나 ‘면닐’이라 소리 내는가. 이 말은 우리의 발음이 ‘며칠’을 ‘몇 월’과 달리 취급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아무도 ‘몇+일’의 원리로 소리 내지 않는다. 이 말의 규칙은 맞춤법으로 ‘몇일’이나 ‘몇 일’로 정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이것이 맞춤법 표기 ‘며칠’이 탄생하게 된 이유다. ‘몇+일’이 아니기 때문에 소리 나는 대로 적는 원리를 따른 것이다. 맞춤법에는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명확히 알 수 없을 때 우리가 소리 나는 대로 적도록 되어 있다. 우리가 소리를 내는 원리가 그대로 맞춤법에 반영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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