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보리밭 사잇길로… 가파도, 날 오라하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일 03시 00분


지나치기 쉬운 제주의 숨은 명소

제주 서귀포시 모슬포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갈 수 있는 가파도는 섬 한가운데 펼쳐진 청보리밭으로 유명하다. 푸른 보리가 물결처럼 넘실대는 풍경에서 봄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다. 제주관광공사 제공
제주 서귀포시 모슬포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갈 수 있는 가파도는 섬 한가운데 펼쳐진 청보리밭으로 유명하다. 푸른 보리가 물결처럼 넘실대는 풍경에서 봄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다. 제주관광공사 제공

속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바다와 밤하늘처럼 새까만 돌, 나지막한 건물과 널찍한 들판으로 탁 트인 시야. ‘천혜의 환경’을 자랑하는 제주는 누구나 찾고 싶고,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그런 곳이다. 이를 반영하듯 제주도관광협회에 따르면 황금연휴(4월 29일∼5월 9일)에 제주를 찾는 내국인은 45만2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8만828명)보다 18.7%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제주를 여러 번 다녀와 더 이상 설렘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수학여행부터 신혼여행에 이르기까지 찾던 곳이어서 더 이상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런 이들에게 찾아볼 만한 숨은 명소를 소개한다. 송악산과 가파도, 곶자왈, 큰엉 등 제주의 바닷바람을 넉넉히 즐길 수 있는 곳들이다. 제주의 빼어난 자연 풍경에 반해 정착한 이들의 예술 작품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명소들이다.

○ 파랗고 노란 두 개의 바다

제주 최남단에 홀로 바다를 향해 뻗어있는 산이 있다. 제주국제공항에서 차로 1시간 남짓 걸리는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송악산이다. 최근 찾은 송악산에는 두 가지 색의 바다가 넘실대고 있었다. 형제섬과 산방산 사이로 눈이 시리도록 새파란 바다가 하나다. 바다와 맞닿은 산언저리에 눈이 어지럽도록 노랗게 핀 유채꽃밭이 또 다른 하나다. 여행객들은 바다와 유채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유채꽃밭 왼편에는 송악산으로 뻗은 제주 올레 10코스가 있다. 송악산은 해발 104m에 불과한 야트막한 둔덕이다. 쉽게 부서지는 화산재 알갱이로 이뤄져 2020년 7월까지 등산객의 입출입이 금지된 자연휴식년제를 실시 중이다. 정상까지 오르진 못하지만 전망대는 갈 수 있다. 먼바다에서 밀려와 절벽을 때리는 파도를 보며 걷는 환상적인 산책 코스가 있다.

승용차를 타고 송악산에서 최남단 해안도로를 따라 10분 정도 가면 모슬포항이 있다. 이 곳에서 하루 네 차례만 운행하는 가파도행 여객선을 타고 20분 정도 가면 ‘파도가 거칠다’는 이름의 섬 가파도(加派島)가 나온다.

섬의 해안선 길이는 4.2km. 바다를 따라 섬을 한 바퀴 감상할 수 있는 길과 섬 한가운데 펼쳐진 60m²(약 18만 평) 넓이의 보리밭을 가로지르는 두 개의 길이 있다. 보리밭길을 찾으면 제주 토종 품종 보리인 ‘향맥’이 바다처럼 일렁이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선착장 바로 앞에서 1인용 자전거를 5000원에, 2인용 자전거를 1만 원에 빌려 섬을 달릴 수 있다. 여객선 왕복 요금은 1만4000원이고 입도료(1000원)는 별도다.

○ 나무와 넝쿨이 뒤엉킨 천연산소방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한계 식물을 동시에 관찰할 수 있는 제주 곶자왈.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한계 식물을 동시에 관찰할 수 있는 제주 곶자왈.

곶자왈은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지역을 일컫는 제주 방언이다. 화산이 분출할 때 점성이 높은 용암이 크고 작은 바위로 쪼개지며 만들어진 곳으로 돌과 나무가 무질서하게 뒤섞여 숲을 이룬 곳이다. ‘곶’은 나무를, ‘자왈’은 넝쿨을 뜻한다.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에 있는 화순곶자왈은 제주 4대 곶자왈 중 ‘한경-안덕 곶자왈’에 속한다. 산방산 근처 해안지역까지 이어져 있어 멀리 산방산도 내다보인다.

이곳은 제주의 허파라 불릴 정도로 공기가 맑다. 제주가 공기가 좋기로 유명하지만 이곳은 특히 산소 함유량이 높다. 흙길을 밟으면 발아래 땅에서 북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난다. 현무암 때문에 ‘땅심’이 얕아 농사를 지을 수 없기에 옛 제주 사람들은 땔감 조달처로 사용했다.

제주에서 자라는 자생식물과 멸종위기에 처한 식물들이 이곳에 가득하다. 돌과 나무가 무질서하게 뒤섞인 모습이지만 마음은 더없이 편해진다. 가끔 산책을 즐기는 자연 방목 소들과 마주칠 수도 있다. 길 곳곳에 흩어져 있는 소똥도 조심해야 한다.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언덕이라는 이름의 ‘큰엉’ 해안은 올레길 5코스에 있다. 제주의 파도가 깎아 낸 성벽 같은 높은 언덕을 따라 걸을 수 있다. 오랜 세월에 물든 까만 돌과 때로는 섬뜩하리만큼 깨끗하고 시퍼런 바닷물에 고민까지 씻기는 듯한 느낌이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자연적으로 자란 나뭇가지가 만든 한반도 모양의 틈이 있어 여행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 예술과 환경이 어울린 섬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자연사랑미술관에선 제주 출신 서재철 사진작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자연사랑미술관에선 제주 출신 서재철 사진작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제주 한경면 저지리에는 예술인들의 집과 갤러리가 모여 있는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9월 물방울 작가로 알려진 김창열 작가의 미술관인 ‘제주도립 김창열 미술관’이 생겼다. ‘回’자를 본뜬 현무암 색깔의 미술관 건물 자체가 작품으로 구경거리다. 작가가 기증한 작품 220점이 여기에 있다. 사방이 물에 둘러싸여 있지만 늘 마실 물을 얻는 데 고통받는 제주에서 영롱한 물방울을 묘사한 작품들을 감상하는 느낌은 색다르다. 마을 전체가 자연 친화적으로 꾸며져 있어 전시장을 들어가지 않더라도 가벼운 산책을 하며 즐기기에 좋다.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는 자연사랑미술관이 있다. 2001년 40회 졸업식을 끝으로 폐교한 가시초등학교를 미술관으로 꾸민 이곳에는 제주 출신 서재철 사진작가가 찍은 제주의 사진이 가득하다. 아름다운 풍경은 물론이고 지금은 사라진 옛 제주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손가인 기자 gain@donga.com
#제주도#국내여행#가파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