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씨가 지난달 27일 뉴욕 맨해튼의 자택에서 18일 공연 예정인 바흐 무반주 전곡 연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바이올리니스트가 ‘음악의 아버지’로 부르는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 3곡과 파르티타 3곡 등 총 6곡을 한 번의 공연에서 연주하는 것(전곡 연주)은 ‘에베레스트 등정’에 비유되곤 한다. 피아노 반주자도, 악보를 넘겨주는 도우미도 없이 3시간 반에 걸쳐 큰 무대 위에서 외롭게 벌이는 사투(死鬪)와 같기 때문이다.
이달 18일 미국 뉴욕 맨해튼 카네기홀에서 이 전곡 연주를 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69)를 지난달 27일 그의 맨해튼 아파트 내 콘퍼런스룸에서 만났다. 먼저 “관객의 2번 휴식시간까지 합치면 장장 4시간짜리 공연이다. 체력적으로 어떻게 감당하느냐”고 물었다.
“오로지 집중력으로 이겨냅니다. 집중하고 몰두하면 (체력적 부담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집중해서 연주하고 그에 대한 관객의 집중력이 무대에서 느껴지는 순간, 그 기분은 정말 기가 막힙니다. 관객이 힘들어도 중간 (클라이맥스) 연주까지는 듣고 가셔야 하는데….(웃음)”
그는 “공연을 앞둔 요즘 끊임없이 바흐만 생각한다”고 했다. 실제로 인터뷰 도중 몇 차례 “질문이 뭐였죠. 제가 바흐 생각 하느라고…”라고 되묻기도 했다.
그는 “바흐 음악을 하다 보면 미술처럼 그 색채가 다 보인다. 슬픔이 있는 곳에선 떨어지는 눈물이 보인다. 아름다움과 웅장함도 그 장면 하나하나가 눈앞에 펼쳐진다”고 말했다. 그의 바흐 무반주 전곡 도전은 20대 때인 1973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제 연주에 대한 비평가들의 평가는 너무 좋았습니다. 그런데 저 스스로 ‘난 아직 바흐를 연주할 준비가 안 돼 있다. 난 이 곡을 연주하기엔 너무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옆에서 아무리 칭찬을 해도 저 자신이 ‘아니다’라고 느끼면 아닌 거죠.”
그는 2005년 손가락 부상으로 5년 넘게 은퇴했다가 2010년 기적적으로 재기했다.
“그 공백기가 나에게 너무도 많은 걸 가르쳤고, 많은 걸 줬어요. 그 기간 손으로 연주할 수 없으니, 머릿속으로 계속 연주했습니다. 그 덕분에 바흐 전곡 연주에 도전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는 “당신 같은 바이올린의 거장도 연주 때 실수를 하느냐”는 질문에 “실수는 안 할 수 없다. 음악에서, 예술에서 완벽한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바이올린을 하는 이유에 대해 “수천만 번 바이올린이 너무 힘들다고 느끼다가도, 수억 번 바이올린이 너무 좋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머니로부터 받은 교육을 소개했다.
“부모의 최고 덕목이 뭔지 아세요. 저는 ‘관찰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의 특징과 장점이 무엇인지, 정체성이 어떤지를 끊임없이 관찰해야 합니다. 바이올린이란 내 정체성을 찾게 된 건 순전히 엄마 덕분입니다.”
그의 어머니(이원숙 여사)는 ‘통 큰 부모가 아이를 크게 키운다’ ‘너의 꿈을 펼쳐라’ 등 여러 권의 자녀 양육에 관한 책을 냈다.
“아주 어릴 때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피아노 초급인 ‘바이엘’ 연주집을 다 공부하고 엄마 앞에서 연주를 하는데, 제가 그때까지도 악보를 읽을 줄 몰랐습니다. 피아노 선생님은 ‘경화야 너 연주 다 했잖아. 왜 악보를 못 읽어’라며 당황해하셨는데 엄마는 ‘우리 딸이 음악 천재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음악을 소리로 전부 외워서 연주했다는 걸 아신 거죠.”
정경화는 “그때 엄마가 ‘너한테 피아노 가르친다고 든 돈이 얼마인데 아직 악보도 못 읽니’라고 혼냈다면 나는 음악을 계속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너는 정말 너 자신이 음악을 사랑하니?”이다. 어떤 부모는 “내가 바이올린을 너무 좋아한다. 그래서 내 아이를 연주자로 키우고 싶다”고 하기도 한다고 했다. 정경화는 “아이들이 부모의 못다 이룬 꿈을 대신 이뤄주는 존재는 아니지 않으냐”고 말했다.
그는 “요즘 한국 젊은이들이 입시전쟁, 취업전쟁 등으로 너무 힘들어한다”고 말하자 “좌절할 때 혼자 이겨내기 참 어렵다. 나도 그랬다. 도움이 필요하다. 안아주는 사람,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또한 부모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했다.
“좌절의 정확한 이유를 스스로 깨닫게 도와줘야 합니다. 그 또한 자신만의 목소리(정체성)를 찾아가는 과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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