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이 나쁘지 않다. 말을 바꾸면 집요하고, 깊이 판다는 뜻 아니겠는가. 누가 독하기만 하다고 하면 싫겠지만, 독하게 연극한다고 하면 기꺼워할 것 같다.”
그런데 ‘깐깐하기로 대학로에서 악명 높은’이라는 수식어는 ‘싫다’고 했다.
“그 표현은 바꾸고 싶다. ‘금녀와 정희’(2008년)를 공연할 때 기획자가 ‘물건’을 만들려고 붙인 이름이다. 작품만 가지고 평가해 줬으면 좋겠다.”
그의 희곡집 ‘1동 28번지, 차숙이네’(2013년)를 읽으면서도 느낀 건데, 그는 표현에 공을 들인다. 다른 작가들은 보통 1장, 2장, 3장…이라고 심플하게 쓰는데 그는 꼭 제목을 붙인다. 1.땅바닥-기초가 비뚤어지다(1동 28번지, 차숙이네), 2.모험보험(연애얘기아님), 3.진실은 거짓말을 낳는다(사랑, 지고지순하다), 4.남편의 옷을 입어보다-집(그녀를 축복하다)이라는 식이다. 생각해 보라. 관객들은 이런 제목이 붙어있는 줄, 알 턱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는 누구인가. 극작가 겸 연출가 최진아(48)다. 아 참, 그는 ‘극단 놀땅’ 대표이기도 하다. 4월 26일 동아일보에서 그를 만났다. 1. 노트-채찍인 듯, 사탕인 듯
내가 댓바람에 ‘당신은 독한가’라고 물은 데는 이유가 있다. 예전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그는 매우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연출가였다. 나는 그걸 ‘독하다’는 이미지로 받아들였다. 그는 몸집도 작고 애리애리하다. 그런 사람이 ‘독하다’고 하니 뭔가 이야기가 되지 않겠는가, 하고 지레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이미지의 중심에 ‘노트’가 있다. ‘노트’는 연극판의 직업어다. 연극을 무대에 올린 뒤, 연출가가 자신의 작품을 평가하고 분석하고, 이를 배우들에게 피드백을 해주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보통 사람은 ‘리뷰’가 익숙할 듯하다. 그런데 ‘노트’를 아주 열심히 한다면? 배우는 피곤할 게 틀림없다.
“처음에는 노트를 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어떤 연출은 공연이 올라가면 극장에 안 간다. 나는 공연에 가서 메모도 하고, 분석도, 하고, 장면을 손보기도 한다. 창작이고 초연이면 더 고치고 싶어진다. 설명할 게 많거나 하면, 일주일 정도 지나 배우들을 소집하거나 분장실로 찾아간다.” 아직까지 배우들과 큰 충돌은 없었다고 했다.
자기가 희곡을 쓰고 자기가 연출하는 연극인은 처음 만났기에 속물근성의 질문을 꼭 하나 하고 싶었다. 자기 작품과 남의 작품을 연출할 때의 차이에 대해.
“희곡을 선택하는 것은 어렵다. 연출은 희곡에게 질문을 하는 것인데, 자꾸 뭔가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내 희곡은 내가 고치면 된다. 그러나 다른 사람 희곡을 연출하다 ‘왜?’가 나오면 작가 본인에게 물어봐야 하는데, 그게 힘들다. 결국은 해석을 해야 한다. 창작극은 더 힘들다. 부족한 지점을 계속 만나게 되고, 그걸 연출이 메워야 한다. 그렇게 쓴 이유를 찾아야 한다. 알베르 카뮈의 ‘칼리큘라’는 참고 문헌 없이도 읽어나가면서 확실하게 알았다. 쾌감 같은 걸 느꼈다.”
그러면서 그는 “작품 하나를 올리려면 에너지가 많이 드는데, 외부의 연출의뢰가 많지도 않지만, 남의 작품을 연출할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연출에게 배우는, 배우를 선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지금은 무뎌졌지만, 처음에는 힘들 때가 많았다. 배우의 세계는 내 세계와는 다르다. 그런데 내 세계를 연기해 달라는 것이다. 배우는 체화돼야 연기를 할 수 있는데, 나와 배우가 다른 생각을 하면 배우도 괴롭고, 그걸 보는 나도 괴롭다. 처음에는 강하게 밀어붙였지만 지금은 차이를 줄이기도 하고, 방향과 방법을 바꾸기도 한다. 배우가 양해를 해주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연출가 최진아는 자신의 연극을 통해 관객에게 무엇을 주고 싶은 것일까.
“감동이다. 그냥 감동이 아니라 인식을 통한 감동이다. 여기서 인식은 지식이 아니라 감수성이나 시각이나 포용력 같은 거다.”
2. 작가-폼 난다
그는 배우를 거쳐 연출가와 작가가 되고, 극단 대표도 맡고 있다. 뭐가 제일 좋으냐고 물었다(애들처럼).
“작가가 가장 멋있다. 작가는 ‘오리진(Origin)’을 갖고 있다. 뭔가 하고 싶은 얘기를 갖고 있다. 작가는 생각, 사고, 인식, 시각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그걸 찾아내기도 한다. 나도 그러려고 노력한다.”
글의 소재를 어떻게 찾는가.
“세월호 이전에는 가장 인상적인 것, 가장 궁금한 것, 가장 느닷없이 찾아오는 것, 가장 풀리지 않는 것들에 관심이 많았다. 내 안의 그런 호기심이 있었나, 하면서 파헤쳐 보고 싶었다. 그런데 세월호 이후에는 사회적으로 커다란 슬픔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다.”
앞으로 쓰고 싶은 글은.
“이율배반적이고, 퇴폐적이고, 인간이 저래도 되나 하는 작품을 쓰고 싶다. (쓰고는 싶은데 뭔가 장애가 있다는 뜻인가.) 아니다. 쓸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게 살수는 없다. 사실 처음에는 성실한 사람이 만족하고 감동하는 연극을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성실한 사람이 불편해 하는 연극이 맞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초창기 작품에 보였던 최진아의 모습이 다시 어른거린다. 그러나 이 대목은 설명이 필요하다. 성실한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연극이 자칫 성실한 사람을 무시하겠다는 뜻으로 읽혀선 곤란하다. 나는 성실한 사람을 ‘단련시켜’ 더 성실한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그는 일찌감치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저는 정말 나쁜 심성을 키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심약해지지 않고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그것을 넘어서면 더 착한 심성과 만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내면 속의 충동을, 그리고 상대방 속의 숨겨진 충동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월간 한국연극, 2006년 6월호)
자, 그럼, 그가 말하는 나쁜 심성의 인물들을 만나러 가보자. 3. 웰컴 투 ZinA 월드
3-1. ‘나쁜 여자’에 대하여
그의 초창기 작품에 나오는 여자들은, 어딘가에 있을 수는 있지만, 활자화하거나 극화하기에는 매우 부담스런 여자들이다. 나는 애정을 담아 그들을 ‘나쁜 여자’로 부르기로 했다.
데뷔작인 ‘연애얘기아님’(2004년)에는 남자 친구에게 점점 의존해가는 자신을 경계하기 위해 멀쩡한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보험회사 여직원이, ‘사랑, 지고지순하다’(2006년)에는 안 된다고 내숭을 떨면서 노골적으로 양다리를 즐기는 여자 건축디자이너가, ‘그녀를 축복하다’(2006년)에는 별로 아쉬울 게 없는데도 춤 선생과 바람을 피우는 결혼 13년차 유부녀가 등장한다.
그들은 여자의 성(性)을 적나라하게, 거침없이, 말하고 즐긴다. ‘사랑, 지고지순하다’의 주인공 성희는 분명 ‘性戱(성희)’에서 왔을 것이고, ‘그녀를 축복하다’의 주인공 선여는 분명 ‘선녀’가 아니라는 패러디일 것이다.
제목도 역설적이다. 여주인공의 성장을 말하고 싶었다는 ‘연애얘기아님’은 분명 연애 얘기이고, ‘사랑, 지고지순하다’에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그녀를 축복하다’에 나오는 유부녀도 축복대상은 아니다. 그러니 최진아는 관객을 불편하고 낯설게 만들어, 역설적으로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을 도드라지게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그는 다른 인터뷰에서 “우리는 성에 대해서 너무 미화시키거나 베일 속에 감춰두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싶었다”고 했다. 즉, 그는 도발을 하고 싶은 것이다. 까발리고 싶은 것이다.
“최진아의 초기 희곡에는 불온성, 여차 싶으면, 수가 틀리면, 그게 먹고 사는 일이건 연애건 엎고 싶다는 욕망, 판을 바꿀 수 있다는 생명력과 용기가 깊은 매력으로 숨어 있다.”(김방옥 연극평론가, 최진아 희곡집 ‘1동 28번지 ’)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불온성’의 주인공은 모두 여자다. 나쁜 여자에 끌리나.
“아니다. 나는 착한 여자에 끌린다(웃음). 내가 착한 학생, 착한 여자로 살아왔는데, 그게 틀린 것 같다. 나의 것이 금지되고 부정되고 있다. 나를 금지하고 부정하는 것까지 내 것으로 인정하려면, 옳다는 범위를 확장할 수밖에 없다.”
철학을 세속으로 풀어보자. 나는 공부를 잘 했고, 공부 못하는 친구는 친구도 아니었다. 그런데 사회에 나와 보니 60, 70점짜리도 잘 살고 있고, 오히려 그들이 나를 숙맥 취급한다. 어떤 때는 그들 말이 맞는다. 어떻게 세상과 사귈 것인가. 내가 지금껏 옳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을 옳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겠는가(나는 그렇게 이해한다).
노트: ‘나쁜 여자 3부작’의 다빈치 코드
‘연애얘기아님’ ‘사랑, 지고지순하다’ ‘그녀를 축복하다’를 읽다보면, 기시감을 느끼는 장면이 몇 번 나온다. 같은 작가가 쓴 것이므로 이상할 것도 없으나, 작가 최진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젠가 그 이유를 물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분명, 그의 무의식 속에 그 장면을 반복해서 쓰도록 하는 그 무엇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첫째, 최진아는 여자 주인공이 관계를 맺고 있는 남자들을 현실이든, 환상이든 꼭 만나게 만든다. 현실에서는 극력 피하는 일인데 말이다(그들이 만났을 때 대체로 적대적인 감정을 보여주는데, 그건 현실적이다). ‘사랑, 지고지순하다’에서는 연적인 현호와 재우, 재우와 창수가 만나고, ‘그녀를 축복하다’에서는 남편과 춤선생이 만난다. ‘그녀를 축복하다’의 유부녀는 남편과 춤선생을 만나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준비까지 한다(결국 불발되지만).
둘째, 주인공들이 만나 서로 때린다. ‘연애얘기아님’에서는 선희와 석영이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을 때리고, ‘사랑, 지고지순하다’에서는 현호와 재우가 만나 슬로우모션으로 서로를 때린다. ‘그녀를 축복하다’는 아예 부부가 서로 뺨을 때리는 장면으로 끝난다. ‘때린다’는 행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작품마다 의미가 다르다. 언뜻 통제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응징(연애얘기아님), 엄존하는 심적 갈등의 확인(사랑, 지고지순하다), 관계 복원을 위한 정화의식(그녀를 축복하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듯도 한데….잘 모르겠다.
셋째, 횡단보도와 신호등이 나온다.
‘사랑, 지고지순하다’는 주인공 성희가 빨간 신호등이 들어온 횡단보도의 한 가운데 서 있는 것으로 끝난다. 나는 성희가 현상변경을 통한 성장을 갈구하지만 결국은 실패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그녀를 축복하다’에서는 다른 의미의 횡단보도가 등장한다. 횡단보도를 뛰어가는 선여의 등을 바라보고 있는 남편의 독백에 그 해답이 들어있다.
“당신 생각 나? 당신 소개팅 다음날 지금처럼 신호등 중간에 걸렸었지. 그땐 꼼짝 못하고 서 있더니 언제 뛰는 걸 배웠나…이제 보는 사람 눈보다 당신 편한 게 더 중요한 나이가 된 거라고, 그게 좋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그게 좀 서럽네…” 이 작품에서 횡단보도는 성장, 독립, 일탈의 상징이다.
3-2. 여자 아닌 것에 대하여
‘나쁜 여자 3부작’을 지나 최진아의 작품 경향이 갑자기(?) 바뀐다.
그 대표작이 ‘1동 28번지, 차숙이네’(2010년)다. 이 작품은 그해 동아연극상 작품상, 대한민국연극대상 올해의연극 베스트7, 대산문학상희곡상을 수상했다(그는 2006년 연극평론가가 뽑은 올해의 한국연극베스트3(사랑, 지고지순하다), 2015년 서울연극인대상 대상(칼리큘라), 2016년 공연과이론평론가모임 올해의작품상(오이디푸스-알려고 하는자)도 받았다).
최진아는 여성주의를 버린 것인가.
“애당초 여성주의적 글쓰기를 했던 게 아니기 때문에, 여성주의가 아닌 다른 주의의 작품을 쓰려는 마음도 없었다…난 무슨 주의의 희곡을 쓰지는 않는다. ‘1동 28번지, 차숙이네’는 집 짓는 현장을 보고 구상한 작품일 뿐이다.”(씬플레이빌, 2014년 9월)
왜 하필 집인가.
“집이라는 사물 자체가 내겐 너무 흥미로웠다. 대부분의 사물을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판단을 하게 되는데, 사실 사물 그 자체만으로 놓고 보면 이는 일종의 화해와 지혜의 산물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로서 집이라는 사물을 바라보고자 하였다. 작품에서 집이 지어지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싶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사물을 면밀히 바라보면서 인간의 갈등과 화해가 담긴 이 사물이 얼마나 귀하게 만들어졌는지 알게 되면 우리들의 시야와 삶에 대한 태도도 조금 더 깊이를 가질 수 있게 될 것 같다.”(예술경영지원센터, 2011년 8월)
그래서 그는 희곡에 ‘이 연극은 집이 주인공이다’라고 분명히 못을 박았다. 집을 짓는 과정을 자세히 보여줬다는 점에서 다큐의 성격도 있다. 배우들이 중간 중간에 집을 짓는 데 필요한 흙과 돌과 물, 콘크리트와 철근, 그리고 건축에 얽힌 역사적 이야기를 관객에게 ‘해설’해 주는 장면을 여러 곳에 배치한 것도 특이하다.
최진아는 ‘금녀와 정희’(2008년)에서는 가끔은 엇나가지만 그래도 접점이 있는 애틋한 모녀의 사랑을 보여준다. 초기의 공격적이고 탐욕적인 성(性) 담론과는 대조적이다.
‘본·다’라는 작품도 있다(2012년). 무엇인가를 보는 인간의 행위 자체를 주제로 만든 연극이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보면 재미있는데, 이해하려고 하면 어려운 것을 보니 그의 의도가 성공한 것 같다.
‘본·다’에서 수없이 얘기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본다’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 본다’는 것이 뭘 의미하는지 선뜻 이해가 어렵다. 그런데 ‘본·다’에서 연상한 ‘듣는다’, 즉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듣는다’는 금방 이해를 했으니 이 무슨 조화이랴. 누구든 한번쯤 일부러 눈을 감고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를 들어보려 한 적이 있어서 그런가.
3-3. 가족에 대하여
그녀의 작품집 ‘1동 28번지, 차숙이네’의 첫 번째 속표지에는 딱 8글자가 쓰여 있다. ‘사랑하는 엄마에게’
그의 작품들을 ‘가족’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는 게 어떨지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독자와 관객은 자기 식대로 읽고 본다는 것이다. 최진아는 ‘차숙이네’는 ‘물성(物性)’을 강조한 작품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 물성과 만나는 가족들에게서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는 점을 밝혀둔다. 이는 연출 의도가 빗나간 게 아니라 망외의 소득이다(집 짓는 과정을 보여주는 무대와 무대제작의 아이디어도 좋았다. 고민 꽤나 했겠다).
이 작품의 착상도 2007년 그의 임실 고향집을 지을 때 얻은 것이고, 등장인물들에도 진짜 가족들의 모습이 투영돼 있을 게 분명하다. ‘금녀와 정희’도 그렇지 않겠는가.
상 받은 작품을 빼고 아끼는 작품이 있느냐고 물었다. 슬며시 ‘홍준씨는 파라오다’를 꼽았다. 그러면서 묻지도 않았는데 셋째 오빠 얘기라고 했다.
본인의 재능을 묻는 질문에서는 곧바로 아버지를 회고했다(아버지는 1995년. 그가 연우무대로 들어갈 즈음에 돌아가셨다).
“재능이 있길 바란다. 내게 감수성이 있다면 그건,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이다. 아버지는 전라북도 임실의 농부였다. 성격도 예민하고, 사랑도 많았다. 문을 안 닫으면 ‘문 닫아라’가 아니라 ‘왜 뒤처리를 못하느냐’고 꾸짖었다. 신문에 명화나 그림이 나오면 유심히 보다가 초등학생인 내게 ‘이 나무는 없어도 되는데’ ‘이리저리 해서 이런 구도가 생겼다’고 얘기해 주셨다. 내가 쓴 글도 열심히 읽어주셨다. 내게 많은 자극을 주신 분이다.”
가족들은 그의 작품을 자주 보는지 궁금했다.
“가족은 나를 사랑한다. 그렇다고 내 연극을 꼭 볼 필요는 없다. 내 희곡은 내 속내를 보여주는 것이다. 내 연극을 안 봐도 좋다.”
그는 아직도 가족으로 향하는 횡단보도 위에 서 있는 듯하다. 그는 더 성장해서 그 횡단보도를 떠날 생각도 없는 듯하다. 주위에서 아무리 빵빵거리며 경적을 울려도.
4. 세상의 중심에서 연극을 외치다
연극에 입문한 계기는 누구에게나 던지는 질문이다. 그는 원광대 치의학과를 졸업하고 개업까지 했다가 연극의 길로 들어섰다(최진아는 이 얘기는 쓰지 말아달라고 여러 번 부탁했다. 작품과 연출 이외의 것이 화제가 되거나 관심을 받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미 일부 매체에 보도됐고, 나의 취재능력을 의심받지 않기 위해(ㅎㅎ) 쓰기로 한다).
연극과 접한 것은 대학교 동아리에서였다. 그 매력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27살에 연우무대에 들어가 2년간 조연출도 하고, 동국대 대학원 연극학과도 졸업했다. 2004년, 앞서 소개한 ‘연애얘기아님’을 쓰고 연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와 연출가의 길로 들어선다. 같은 해에 혼자서 ‘연극연습실 놀땅’을 만들었다가 2010년에 6명의 배우를 받아들여 ‘극단 놀땅’으로 한국연극협회에 정식으로 등록했다.
이 시대 연극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는 연극 자체의 의미, 시대 속에서의 연극의 의미, 연극이 관객과 만나는 의미에 대해 따로따로 설명했다.
“우선 연극의 의미를 말하자면, 연극은 작업과정도 관객과 만나는 방법도 다른 예술장르와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그 점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대단한 것이다. 어떤 때는 흥하고, 어떤 때는 굴곡도 있겠지만…”
이 대목에서 그가 조카에게 했다는 말을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
“연극 보러 가지 않을래? 우리 앞에서 사람들이 직접 말을 해. 어디에 그런 게 있니? 그림이 그러니, TV가 그러니, 영화가 그러니? 연극은 무대에서 사람이 너에게 직접 말을 걸어. 일상에서 만나지 못한 다른 걸 말해 줘. 우리, 연극 보러 가지 않을래?”
시대의 의미에 대해서는 “역시 세월호 전후가 다르다. 세월호는 연극의 시대사적 의미에 대한 질문을 깊게 해줬다”고 했다.
관객은 무슨 의미인가.
“인간의 감정과 욕망은 다양하다. 잘 닦인 고속도로만이 아니라, 그밖에도 얼마든지 길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을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다면 관객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고, 그런 관객이 모이면 사회도 더욱 다양해질 것이다. 사회에는 규범, 도덕, 윤리, 관습 등 벽이 너무 많다. 그 때문에 상처받고 힘든 사람도 많다. 복속이나 종속을 안 해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연극을 보고 듣고 알 수 있다면 이 사회는 더 나아지지 않겠는가.”
관객에 대한 생각은 입문할 때와는 약간 달라졌다.
“예전에는 관객 10명 중에 3명이라도 잘 봐준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여러 명이 잘 봤다는 의미가 가슴에 와 닿는다. 예전에는 관객수도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보는 사람도 적고, 기사화도 안 되고, 관계자들도 보러 오지 않으면 내 존재는 뭐지, 내 작품은 뭐지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소수라도 내 작품을 농밀하게 느껴준다면, 그건 여전히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는 “연극이 사회에 답하려면 반향을 일으켜야 하는데, 아직은 거기까지 가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연극으로부터 확실하게 보답을 받고 있다”고 했다. 보답이란 행복감, 소속감, 성취감 같은 거다.
마지막 질문. 어떤 연출가가 되고 싶은가.
“저 연출가는 진짜다, 진실을 파고드는 연출가다, 라는 말을 듣고 싶다.”
인터뷰를 마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최진아는 새로움에 대한 갈증이 있는 것 같다. 본인부터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불편한 시각이나 인식까지도 관객들에게 과감하게 제공함으로써 자신의 연극을 보는 사람들도 틀을 깨고, 뭔가 새로움에 대해 눈을 뜨게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내 생각을 말하자 그는 “그거 괜찮은 것 같다”고 했다.
‘1동 28번지, 차숙이네’는 집을 다 짓지 못하고 끝난다. 최진아, 그도 미완이다. 작가와 연출가라고 하지만, 관객에게는 그도 배우다. 무대에서 완성을 향해 나아가야 할 숙제를 안고 있는….
(최진아가 쓰거나 연출한 작품은 다음과 같다. ▽작·연출 ‘연애얘기아님’ ‘사랑, 지고지순하다’ ‘그녀를 축복하다’ ‘금녀와 정희’ ‘하노이’ ‘1동 28번지, 차숙이네’ ‘예기치 않은’ ‘본·다’ ‘홍준씨는 파라오다’ ‘오이디푸스-알려고 하는 자’ ▽연출 ‘담담담’(각색 연출) ‘내 마음의 옥탑방’ ‘매직룸’ ‘다녀왔습니다’ ‘천지간-배우가 읽어주는 소설’ ‘카산드라의 예언’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박완서 배우가 다시 읽다’ ‘브루스니까 숲’ ‘장롱 속에 귀신이 산다’ ‘칼리큘라’ ‘이피게니에X5’(공동연출) ‘벚나무 동산’ ‘6명의 배우들, 세월을 만나다’ ‘권리장전 2016 검열각하-흔들리기’ ‘Ephigenie in Exile’(공동창작, 공동연출) 등) 심규선 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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