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언의 마음의 지도]선택의 심리학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5일 03시 00분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학자 서울대 명예교수
정도언 정신분석학자 서울대 명예교수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는 내가 하는 선택은 내가 한 것이 아니고 내 무의식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눈에 비친 인간은 무의식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허약한 존재였습니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후보자들 사이의 격렬한 최종 토론도 끝났고 여론조사도 이제는 발표할 수 없으니 유권자들이 어떤 기준으로 최종 결정을 해야 할지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사람의 평가 방법은 각자 살면서 익히는 것이고 다양하지만 정신분석적 의견을 더한다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물론 심층심리학을 공부해 온 제 입장에서 독자에게 제공하는 참고사항일 뿐입니다.

마음이 작동되는 기전에서 네 가지 중요한 요소는 이드(본능, 욕구), 초자아(양심, 도덕, 이상), 자아(나), 그리고 현실(상황, 조건)입니다. 인간은 늘 이런 구도에서 자신만의 해법을 만들어냅니다. 이번 대선에서도 이런 네 가지 요소가 움직여서 누구를 찍을지가 결정될 겁니다. 현재 대한민국 안팎의 상황이 엄중해서 그 결정은 앞으로 오래 우리 각자의 삶에 큰 영향을 줄 겁니다.

문제는 선택의 기로에서 마음이 움직이는 기제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무의식의 힘은 여기저기에 넘치고 우리는 그 힘에 끌려 다닙니다. 대통령 선택을 위한 투표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해가 안 되시나요? 결혼하신 분들에게 감히 묻습니다. 배우자를 어떻게 고르셨습니까? 조건을 따져서 한 분들도 있겠지만 어쩐지 마음이 끌려서 그리 하신 경우도 많았을 겁니다.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 시집, 장가가신 분들이 흔하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말은 무의식이 뒤에서 크게 관여했다는 뜻입니다.

투표는 일단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을 나누고 제일 좋아하거나 가장 덜 싫어하는 사람을 뽑는 겁니다. 어떤 후보자의 정책과 비전이 마음에 든다고 겉으로 논리를 세워 말할 수는 있지만 어쩐지 마음에 들거나 현실에서 도움을 줄 사람을 뽑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습니다.

투표일이 곧 닥쳐오는 이 시점에서 마음이 가는 목적지와 방향을 정하셨나요? 도움을 위해 어떤 내비게이션을 틀어놓으셨는지요? 정신분석학이 제공하는 내비게이션을 소개합니다. 특징은 후보자 각자의 이드, 초자아, 자아, 현실 감각, 그리고 유권자 각자의 그것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선 이드(사탕의 유혹)입니다. 대통령이 꼭 되어야 하겠다는 각 후보자의 욕망 구조를 잘 들여다보십시오. 애국심인지, 권력욕 충족인지, 다른 목적이 있는지. 내 욕구와 소망을 많이 충족시켜준다는 후보자일수록 혹하지 마시고 한 번 더 생각해 보십시오. 복지 향상이나 금전 지원이 싫을 사람은 없지만 세상은 사탕으로만 돌아가지 않습니다. 엄중한 현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다음은 초자아(채찍의 대리만족)입니다. 그동안 자신이 미워하던 계층을 화끈하게 혼내줄 것 같은 공약도 믿지 마세요. 대한민국은 어차피 복작거리며 같이 살아야 하는 집입니다. 과거는 어차피 떠나간 버스와 같아 되돌릴 수 없는데,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을 가지고 마케팅을 하는 겁니다. 무지갯빛 미래를 약속하는 사람도 쉽게 믿어서는 안 됩니다. 고통 없는 성취는 없습니다.

지도자는 처벌하고 배제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좋든 싫든 모두 모아 격려하고 도와서 국가의 에너지 총합과 발전 추진력을 높이는 사람입니다. 과거 청산에 전력을 다하기보다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지혜를 가진, 분열보다는 통합에 매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 지도자의 초자아 시곗바늘이 청산과 징벌 쪽인지, 아니면 이상국가 건설을 가리키고 있는지를 따져 보아야 합니다.

미워하던 사람들이나 계층을 지도자가 나서서 대신 벌하거나 불편하게 만들겠다고 하면 유권자가 대리만족을 느낍니다. 하지만 우리 각자의 초자아도 들여다봄으로써 그것이 대한민국 미래에 과연 도움이 되는지를 따져야 합니다.

끝으로 지도자의 자아 기능도 문제입니다. 아무리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이 앞으로 축소될 것이라고 기대를 해도 일단 자리에 올라가면 권력의 속성과 주변의 압력으로 대통령이 가진 엄청난 힘을 스스로 줄이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권한 축소를 주장한다면 선거 전 전략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일단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우리는 ‘권한 축소’에 대해 멀리서 기도나 올리는 처지가 될 겁니다.

지도자의 자아는 이드(권력욕), 초자아(징벌 욕구, 일등국가 설립의 이상), 현실(안보, 경제, 외교, 국내 정치권) 사이에서 조정, 협상, 타협을 도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주 어렵습니다. 머리만 좋아서는 되지 않고 추진력과 돌파력도 있어야 합니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거나 자기 성찰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밖으로만 돌아서도 되지 않습니다.

유권자의 자아도 검증 대상입니다. 과연 내 욕구와 분통함을 잠시 접고 나라의 장래를 위해 한 표를 행사할 결정을 합리적으로 하고 있는 것일까, 고심해 보아야 합니다.

후보자들의 무의식을 알아채는 좋은 방법은 그들이나 그 주변에서 하는 말을 연구해 보는 겁니다. 그들의 변명처럼 ‘선거 전략’으로 넘기지 마시고 뿌리를 잘 캐면 그들의 무의식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유세 현장에서는 술 취해 나오는 진심처럼 평소 생각이 뛰쳐나옵니다. 말이 그 사람입니다. 유권자의 선택은 늘 쉽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본능(사탕의 유혹)과 초자아(채찍의 대리만족)는 자아 판단을 괴롭힙니다. 본능, 초자아, 자아, 현실 간에 건강한 균형이 이루어져야 나라의 미래가 밝아집니다.

지도자의 최대 덕목도 이드, 초자아, 자아, 현실 간의 균형을 건강하게 지키는 일입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개인의 불행이 아닌 나라 전체와 후속 세대의 불행으로 이어집니다. 대선에 흔히 등장하는 ‘대권’이라는 말은 국민이 자식이고 대통령이 부모인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대통령 선출은 부모인 국민이 앞으로 우리를 모시고 잘 살아보겠다는 자식들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겁니다. 정말 잘 뽑아야 합니다. 흘러넘치는 달콤한 말에 배신당하지 않으려면,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 왕’을 일독하시길 권합니다.
 
정도언 정신분석학자 서울대 명예교수
#선택의 심리학#무의식#프로이트#지도자의 자아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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