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반성·100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5일 03시 00분


반성·100 ― 김영승(1959∼ )
 
연탄장수 아저씨와 그의 두 딸이
리어카를 끌고 왔다.
아빠, 이 집은 백 장이지?
금방이겠다, 뭐.
아직 소녀티를 못 벗은 그 아이들이
연탄을 날라다 쌓고 있다.
아빠처럼 얼굴에 껌정칠도 한 채
명랑하게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딸을 낳으면 이 얘기를 해주리라.
니들은 두 장씩 날러
연탄장수 아저씨가 네 장씩 나르며
얘기했다.

 
아마 자식을 키워본 부모라면 공감할 것이다. 아이의 입에서 튀어나온 한마디의 말이, 온 세상을 환하게 만들던 경험. 고맙고 감사해서 눈물 났던 경험. 네가 나보다 낫구나, 아이 앞에 무릎 꿇고 싶었던 경험. 물론 아이 때문에 힘든 때도 있지만 이런 경험이 기적처럼 찾아와 삶을 사랑하게 만든다. 어린아이란 정말 경이로운 존재다.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았는데 그들은 놀라운 눈과 입과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 시에도 그런 아이가 둘이나 등장한다. 두 아이 모두 여자아이고, 한 연탄장수의 자식들이다. 어린 탓에 팔뚝은 가늘고 여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제 아버지를 도우려고 따라 나왔다. 이 기특한 소녀들은 평소에도 아버지를 자주 따라다녔는지 척척 일을 해 나간다. 혹시 아버지가 미안해할까 마음 쓰는 모양새도 너무 예쁘다.

저 아이들에게 연탄 나르기는 노동이 아니라, 아버지 사랑하기의 일부이다. 누가 가르쳐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듯, 누가 시켜서 두 팔 걷고 나선 것은 아닐 것이다. 아이가 아버지의 리어카를 미는 것은 “아버지 사랑해요”라는 말과 같다. “안 힘들어요”라는 말도 “아버지를 사랑해요”라는 말과 같다. 이 사랑은 얼마나 자연스럽고 놀라운가. 두 아이는 본인들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를 테지만, 그들은 기적과도 같다. 연탄장수 아저씨를 살리는 것은 바로 저 아이들이다. 연탄장수 아저씨가 연탄을 네 장씩 힘차게 드는 이유도 바로 저 아이들이다.

김영승 시인은 ‘반성’이라는 제목에 번호를 붙여 가며 연작시를 썼다. 그중에서 나는 100번째 이 작품을 가장 좋아한다. 좋아할 수밖에 없다. 가난했던 내 아버지와 사랑하는 내 딸이 이 작품에서 자꾸 보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자신이 딸을 낳으면 이 얘기를 해주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기억했다가 나 역시 딸을 낳고 이 얘기를 해주었다. 저 연탄장수와 두 딸이 만들고, 시인이 전해준 사랑의 이야기. 섬기고 업어주고 싶은 우리 아이들에 대한 저 놀라운 이야기를 말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김영승 시인#반성·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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