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원의 옛글에 비추다]선생 아닌 선생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9일 03시 00분


《덕이 없으면서도 명예를 탐하고 이롭게 여겨 억지로 스승이 되는 것은 망령된 것이다
無其德而貪名樂利 强爲人師者 妄也
(무기덕이탐명락리 강위인사자 망야)

-이서, ‘홍도유고(弘道遺稿)’》
 
스승이란 어떤 사람인가. 조선 후기의 학자 이서(李서)는 ‘자신의 도를 미루어 남에게 미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하기를 “그 도가 대단히 커서 덕을 이룬 사람이 아니라면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수양을 통해 품성이 완성된 사람이라야 남의 본보기가 되는 것인데, 이러한 덕성을 지니지 않고서 스승이라는 명예와 그에 따른 이익만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진정한 스승이라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교권의 실추는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이 강조되었다는 것은 스승의 권위가 위험 수위에 올랐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조선 후기의 학자 성해응(成海應)은 스승에 대해 논하는 글에서 ‘옛사람들은 덕을 사모하여 스승을 택하였는데, 지금 사람들은 권세를 사모하여 스승을 택한다’고 탄식하면서, 가정교사식으로 남의 집에 고용되어 자제들을 가르치다 보니 권위를 가지고 제대로 교육을 할 수가 없게 되었고, 이 때문에 똑똑한 사람들은 이들을 스승으로 여기지 않는다고도 하였다. 이른바 스승이라는 존재가 성장 과정에서 조금의 지식을 전달받거나 그의 권세를 빌려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려는 수단으로 전락한 것을 안타까워한 것이다.

옛사람들은 자신이 선생으로 불리는 것을 감히 감당하지 못하였다. 온전한 덕을 갖추었다고 자임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요즘 시대에는 스스로 선생임을 내세우고 있다. 또 가장 각광받는 직업이 교사라고 한다. 이유는 다름 아닌 직업의 안정성 때문이다.

직업으로의 선생은 나를 위한 것인가 학생을 위한 것인가. 덕은 선택에 의해 완성되지는 않을 테니, 옛사람이 말하는 스승과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스승은 개념이 다르다 하겠다. 표현이 같다고 하여 다른 개념의 두 단어를 마치 같은 것인 것처럼 여기며 동일한 대우를 요구하는 것도 그리 정당하지는 않은 듯하다.

이서(1662∼1723)의 본관은 여주(驪州), 호는 옥동(玉洞)이다. 집안이 정치적 파란을 겪자 은거하여 학문에 힘썼고, 글씨에도 능하여 동국진체(東國眞體)의 창시자로 평가받았다. 실학의 선구 역할을 한 이익(李瀷)이 그의 동생이다.

이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스승#선생님#이서#홍도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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