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은 음악가들에게 ‘교류의 시대’였습니다. 유럽 전역이 기차로 연결되고, 새롭게 열린 전신망과 정비된 우편망도 빠른 원거리 소통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다른 나라 도시로 연주 여행을 간 기악 연주자들이나 지휘봉을 든 작곡가들은 그 도시의 유명 음악가들을 찾아 음악관을 토론하거나 친구 되기를 청했습니다. 작곡가들은 새로 친구가 된 연주가들에게 신작을 헌정하기도 했습니다.
벨기에의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 외젠 이자이(1858∼1931)는 ‘명곡 헌정받기의 역사’에서 챔피언으로 꼽을 만합니다. 인상주의 음악의 선구자로 불리는 클로드 드뷔시가 자신의 유일한 현악사중주곡을 이자이에게 헌정했고, 프랑스 국민주의 음악운동의 선구자였던 카미유 생상스도 첫 번째 현악사중주곡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작곡가 세사르 프랑크는 1886년 9월의 어느 아름다운 날 아침 이자이에게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의 악보를 불쑥 건넸습니다. 프랑크 64세, 이자이 28세 때였습니다. “뭔가요, 프랑크 선생님?” “자네에게 주는 결혼 선물일세.” 그날은 이자이의 결혼식 날이었던 것입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이었지만 이자이는 악보를 읽자마자 이 곡이 무척 마음에 들었고, 결혼식 하객으로 온 친한 피아니스트와 함께 다른 하객들 앞에서 연주했습니다. 이 곡은 오늘날 세계의 바이올리니스트뿐 아니라 첼리스트, 플루티스트들까지 즐겨 연주하는 인기곡이 되었습니다.
왜 그가 유독 많은 작곡가들로부터 작품을 헌정받았을까요? 작곡가들의 의도에 맞춰 작품을 해석해 주는 유능한 바이올리니스트였기 때문이겠죠. 한편으로 이자이 자신도 수많은 바이올린 곡을 작곡해 다른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주었습니다. 그가 바이올린 독주를 위해 작곡한 여섯 곡의 소나타는 당대의 명바이올리니스트인 시게티, 티보, 에네스쿠, 크라이슬러, 크릭붐, 키로가의 연주 스타일에 맞춰 썼고 이들 각각에게 헌정했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인 12일은 이자이가 세상을 떠난 지 86년 되는 날입니다. 그는 세상에 없지만 인터넷을 통해 그가 헌정받은 곡과 그가 헌정한 곡은 물론이고 그가 생전에 남긴 연주도 어렵지 않게 들어볼 수 있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