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 사물 이야기]색종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0일 03시 00분


어버이날을 앞둔 지난 주말에 조카들이 집에 왔다. 여느 해처럼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이모인 나에게 색종이로 만든 핑크색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주기 위해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조카들이 종이로 접은 카네이션을 언제까지 줄지 궁금하다. 용돈으로 생화 한두 송이를 사는 게 간단하다고 여길 나이가 될 테니. 내년에도 저 포동포동한 손으로 종이꽃을 접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왜 버리고 싶지 않은지. 한집에 살 때도 아이들에게 컴퓨터는 물론 텔레비전도 잘 보여주지 않아서 종이접기 외에도 같이 할 수 있는 놀이를 궁리해야 했다. 끝말잇기, 묵찌빠, 오목, 체스, 주사위놀이 등등. 그래도 아이들은 호시탐탐 내 휴대전화를 넘겨다보곤 하지만.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도 수업시간에 색종이로 개구리나 배, 비행기, 바지저고리 같은 것을 접었던 게 생각난다. 준비물이 크레파스나 물감일 때 같이 다양한 색의 종이를 가져오는 친구가 주목을 받았고. 나는 열 가지 색깔쯤 들어 있던 ‘무지개표 색종이’를 썼겠지. 조카들이 유치원에서 쓰던 색종이 세트에 금색, 은색, 반짝이, 체크나 도트 무늬 같은 세련된 종이들이 있는 걸 보았을 때 무척이나 신기했다. ‘종이학’이라는 가요가 유행하던 시절에는 거의 모든 친구들이 종이학을 접는 데 몰두했고 그 후에는 색종이나 포장지를 오려 학알을 접었다. 그때 친구들에게 받은 학알이 담긴 유리병은 지금도 갖고 있다.

어떤 단편소설을 준비할 무렵이었다. 일본에서 산 적이 있는 주인공의 할머니가 큰 불행을 겪은 손녀에게 마음을 달래기 위한 방법으로, 일본어로 오리가미(折紙)라고 하는 종이접기를 알려주는 장면을 써야 해서 한동안 거기에 몰두하고 책을 찾아 읽었다. 그때 알게 된 사실들이 몇 가지 있다. 종이접기를 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서리를 잘 맞춰 접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지 않으면 완성품의 귀퉁이들이 조금씩이라도 전부 어긋나 버리게 마련이니까. 접었던 종이를 도로 펼쳐서 접어도 한 번 생긴 종이 자국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출강하는 소설 창작 강의실에 지난달 중순부터 노란 색종이로 접은 작은 배 두 척이 창가에 놓여 있었다. 누가 접었을까. 미수습자들 중 단원고 학생 네 명이 살아 있었다면 첫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19대 대통령 선거가 어제 끝났다. 첫 대통령 선거권을 가졌을 때 어떤 후보를 선택했나? 국민과의 약속을 잘 지키고 국민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책임 있어 보이는 후보가 아니었을까.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대선 전 강의실에 들어갔더니 바람 때문인지 노란 배가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었다. 그래서 보게 되었다. 배의 한쪽 면에 새겨진 숫자들을. 20140416. 노란 배를 숫자가 보이는 쪽으로 나란히 잘 세워두고 강의실을 나왔다.
 
조경란 소설가
#색종이#어버이날#19대 대통령 선거#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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