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 ‘가슴에 오는 山’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6일 03시 00분


故박고석 화백 탄생 100주년展

1977년작 ‘외설악’. 산의 화가 박고석 화백은 강렬한 색채와 두꺼운 질감으로 한국 산의 힘찬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가로 50cm, 세로 60.6cm의 작은 화폭임에도 웅혼한 기상이 잘 전달된다. 현대화랑 제공
1977년작 ‘외설악’. 산의 화가 박고석 화백은 강렬한 색채와 두꺼운 질감으로 한국 산의 힘찬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가로 50cm, 세로 60.6cm의 작은 화폭임에도 웅혼한 기상이 잘 전달된다. 현대화랑 제공
“내 주변 생활에서 산을 늘 가까이 하니까 산이 보일 때가 있다. 산이 보인다는 것은 산 자체나 산의 명암, 광선, 산세들이 드라마틱하게 나와 만난다는 얘기다. 거기서 보이는 산을 ‘가슴에 오는 산’이라고 할 수도 있다.”

박고석 화백(1917∼2002)은 스스로 말한 ‘가슴에 오는 산’을 정직하게 화폭에 옮겼다. 1968년부터 산행을 시작하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산을 눈에, 가슴에 담은 터였다. 서울 근교의 산뿐만 아니라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의 명산을 두루 찾았다. ‘도봉산’ 연작을 비롯해 ‘백암산’ ‘외설악’ ‘내설악’ ‘세존봉’ ‘백학봉’ 등 산 시리즈가 그의 손에서 나왔다. 두꺼운 질감과 강렬한 색채의 산들은 작은 크기의 캔버스 안에서도 위풍당당했다. 그의 이름 앞에 ‘산의 작가’가 놓이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박고석 화백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서울 종로구 삼청로 현대화랑에서 ‘박고석과 산’전이 열리고 있다. 1950, 60년대 표현주의적 화풍을 드러내는 작품과 추상작품, 산을 모티브로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했던 1970, 80년대 작품과 만년의 1990년대 작품까지 박고석 화백의 화업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회다.

작품 40여 점 중 산 그림들이 단연 힘차다. “강인한 골격과 탄탄한 근육질, 중후한 마티에르와 밀도 높은 유채의 점착성이 최고조에 이른 때”라는 평(서성록 안동대 교수)대로다. 1977년 그린 ‘외설악’에는 남성적인 거친 기운이 담겨 있는 반면, 같은 산을 그린 1984년 그림은 개성적인 붓의 감각은 살아있되 선은 온화해졌다. 여름의 초록빛이 강한 ‘외설악’뿐만 아니라 벚꽃 흐드러진 지리산 ‘쌍계사 길’, 색색이 물든 나뭇잎들로 진한 갈색에 가까워진 설악산 ‘공룡능선’ 등 사계절 산을 다채롭게 담아냈다.

산 그림뿐 아니라 박고석의 초기 화풍을 확인할 수 있는 그림들도 나왔다. 1951년작 ‘범일동 풍경’은 피란지 부산 범일동의 암울한 모습을 그린 것으로, 거칠고 굵은 윤곽선을 통해 어두운 분위기를 드러낸다. 1957년 동료들과 함께 모던아트협회를 창립한 뒤에는 화면을 대담하게 나눠 굵고 짙은 색과 면으로 처리하는 추상작품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1957년 고은 시인, 소설가 박경리 선생과 함께한 박고석 화백(왼쪽부터). 현대화랑 제공
1957년 고은 시인, 소설가 박경리 선생과 함께한 박고석 화백(왼쪽부터). 현대화랑 제공
전시와 함께 출간된 국·영문 화집에 실린 부인 김순자 여사의 회고가 흥미롭다. 박고석은 이중섭 유영국 한묵 등 화가들, 고은 박경리 등 문인들과 어울리던 예술가였으며, 홍익대 서라벌예대 등에서 강의할 때는 제자들에 대한 애정이 컸던 선생님이었다. 그러면서도, 아내가 빌고 빌어 갖고 온 외상술을 친구들과 함께 고무신에 따라 마시기도 하고, 쌀이 없어 팥으로 죽을 쑤었더니 아침부터 죽을 주면 어떡하느냐고 화를 내던 ‘철모르는’ 남편이었다. ‘박고석과 산’전은 이렇듯 그림과 사람에 대한 정밖에 모르던 화가가 남긴 강렬한 작품들이 주는 감동이 오롯이 전달돼 의미 있다. 23일까지.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박고석 화백#삼청로 현대화랑#박고석과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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