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은 전자기기와 인터넷의 발달에 힘입어 세계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 휴대전화 또는 태블릿PC와 인터넷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취향, 직업,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연결된다. 그렇다면 현대인은 덜 외로울까? 영국 소설가 폴라 코코자는 4월 출간한 첫 장편소설 ‘인간이란 무엇인가(How to Be Human)’에서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그는 극단적으로 고독한 현대인들이 동물과의 교감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겨우 얻는다고 말한다.
주인공 메리는 얼마 전 강압적인 성격의 약혼자 마크와 결별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회사에서 자리를 지키기도 힘들어졌다. 메리의 집과 벽을 맞댄 옆집에는 이제 막 둘째 딸을 얻은 젊은 부부 에릭과 미셸이 산다. 출근 준비로 소란스러운 아침의 일상부터 오후 늦게 아기의 보채는 소리까지, 생기 있는 옆집에 비해 메리의 집은 늘 적막하다.
어느 날 밤 메리의 집 정원에 ‘그’가 나타난다. 오렌지 빛의 풍성한 털, 세모꼴 얼굴, 반짝이는 영리한 눈, 쫑긋한 귀를 가진 여우였다. 메리는 여우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마크가 떠난 뒤의 외로움, 무관심한 동료들에게 입은 마음의 상처, 산후 우울증으로 갓 낳은 딸을 방치하는 이웃 미셸에 대한 걱정, 한없이 사랑스러운 이웃집 딸 플로라, 어릴 적 부모의 무관심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었던 자신…. 여우는 그녀의 말을 편안히 들어준다.
메리와 여우의 우정이 쌓여가며 ‘그’는 정원에서 부엌으로, 거실의 소파로, 점점 메리의 일상 깊숙이 들어온다. 메리는 옆집 아기 플로라에게 어린 시절 부모에게 학대받은 과거의 자신을 투영한다. 여우는 메리의 이런 마음을 눈치 챈 듯 어느 저녁 플로라를 물어다 메리에게 데려온다. 플로라와의 달콤한 일상도 잠시, 아기가 없어진 충격에 빠진 옆집 부부, 메리를 다시 차지하려는 전 약혼자 마크가 메리와 여우의 삶을 위협한다.
여우는 런던 시내에서 흔히 보이는 동물이다. 쓰레기통을 뒤지고, 정원에 굴을 파 집 토대를 흔들고, 애완동물을 잡아먹어 런던 시민의 원성을 산다. 소설 속 메리를 제외한 모든 이들의 여우에 대한 혐오감은 영국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메리는 여우에게서 인간한테서는 발견할 수 없는 ‘품위’를 본다. 서로 헐뜯고, 위선적이고, 폭력적인 사람들에 비해 여우는 의젓하고, 정직하고, 침착하다. 메리는 여우에게서 이상적 인간성을 꿈꾸고, 잃어버린 인간의 모습을 ‘그’에게서 찾는다.
작가는 케임브리지대 영문과를 졸업한 후 이언 매큐언 등 유명 작가를 배출한 이스트앵글리아대 문예창작 과정을 수료했다. 영국 문단은 코코자를 오랜만에 등장한 순수문학 작가라며 반기고 있다. 맨부커 상을 두 번 수상한 힐러리 맨틀은 “흥미롭고 굉장한 데뷔작”이라고 호평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