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언의 마음의 지도]‘프로이트는 죽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9일 03시 00분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학자 서울대 명예교수
정도언 정신분석학자 서울대 명예교수
저는 아직 시사주간지 ‘타임’의 표지에 얼굴이 나온 적이 없습니다. 그리되면 얼마나 영광일까 하는 생각은 합니다만 그럴 확률은 복권에 당첨될 정도보다도 낮지 않을까요?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크문트 프로이트 박사의 얼굴이 여러 번 등장한 것에 만족하려 합니다.

타임과 뉴스위크는 시사주간지 양대 산맥을 이루는 대단한 경쟁관계였습니다. 1993년 타임은 표지에 프로이트의 얼굴을 보여주면서 ‘프로이트는 죽었는가?’라고 정신분석학의 가치와 효용성에 관해 의문을 던졌습니다. 이에 대해 뉴스위크는 2006년 프로이트 탄생 150주년을 맞아 표지에 프로이트 얼굴을 넣고 ‘프로이트는 죽지 않았다’고 도발적으로 답했습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둘러싼 논쟁은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아직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죽어서 한 줌의 재가 된 프로이트가 아직도 살아있다? 그렇다면 정신분석학이 가진 힘으로 프로이트는 우리 곁에 살아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프로이트를 살린 힘은 무엇일까요? 통찰의 힘입니다. 그는 인간이 무의식의 영향을 받는 존재라는 점, 그리고 과거가 현재의 삶과 미래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꿰뚫어보았습니다. 그 외에도 프로이트가 주장한 인간의 본능적 욕구, 즉 성욕과 공격성은 우리 주변의 현실에서는 물론이고 문학, 음악, 미술, 광고 등 곳곳에서 모습을 나타냅니다. 영국의 시인 위스턴 오든이 ‘프로이트를 추모하며’에 쓴 것처럼 프로이트는 그저 한 사람의 인간이 아닌 (인간성에 대한) 의견 전체입니다. 그리고 정신분석학은 오늘날 말로 하는 모든 치료의 뿌리이기도 합니다.

저는 지난 2년간 중국, 일본, 대만의 정신분석학회에 초청받아 강연을 다녔습니다. 중국은 정신분석학의 신생국입니다. 하지만 2년마다 개최 도시를 바꿔가며 국내 학회를 열고, 그때마다 중국인 수백 명과 외국인 수십 명이 참석합니다. 일본은 오래전 프로이트가 직접 정신분석가 수련을 허락한,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정신분석학 역사를 자랑합니다. 대만은 소수의 힘으로 이번 달 초에 ‘국제정신분석학회 아시아태평양 학술대회’를 주관했을 정도로 열심입니다.

프로이트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시작한 정신분석학 운동은 이제 유럽, 북미, 남미를 넘어 아시아 태평양으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국제정신분석학회 산하의 세 대륙이 교대로 회장직을 맡고 학술대회를 개최해 왔으나 이제 정신분석학 지도가 새로운 지역, 특히 동아시아로 이미 확대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외에도 인도, 호주가 참여하고 그 외 태국,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의 국가들도 준비가 되면 움직일 겁니다. 그러니 프로이트는 죽지 않고 살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대한민국도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미 수년 전부터 국제정신분석학회가 승인한 정신분석가의 국내 수련이 시작되었고 졸업생들이 배출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한국인의 마음을 이해해 온 조상들의 지혜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정신분석학이 국제무대에서 어떻게 공헌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일본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들의 문화적 특성을 정신분석학에 접목해 고유한 이론을 개발해왔습니다. 중국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이미 공자, 맹자, 노자 등등 뛰어난 사상가들이 남긴 풍부한 지적 자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번에 제가 대만 국제정신분석학회에서 발표한 기조강연, ‘오이디푸스 왕과 심청: 한국의 오이디푸스에 관해’가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강연의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서양의 오이디푸스는 전형적인 정복자입니다. 델파이의 신탁을 두려워한 부모가 출생 직후에 버렸기에 정신적인 손상을 받아 싸움꾼으로 자랐고 본의 아니게 아버지를 죽이고 엄마를 차지해 자식들을 낳는 패륜을 저질렀습니다. 결국 패륜의 진실을 찾아내고는 스스로 눈을 멀게 한 후 방랑을 떠납니다. 프로이트는 이 이야기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만들어냈습니다.

우리의 심청은 출생 후에 곧 어머니를 잃고 눈먼 아버지의 손에서 마을 사람들의 젖을 얻어먹고 자랐습니다. 아버지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삼백 석에 자신을 팔고 바다로 뛰어들지만 결국 왕비가 되고 아버지 눈도 뜨게 만들어 행복한 결말로 이어집니다. 심청의 마음에서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뚜렷하게 나타나지만 효행이라고 하는 문화적 틀을 얻어 매우 다른 행태를 보이게 됩니다.

그러니 심청전은 오이디푸스 이야기에는 없는 인간 심리의 다른 면을 채워주는, 학술적으로 매우 가치 있는 내용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처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공유하지만 문화의 영향으로 양상이 다르게 전개된 두 이야기를 비교해서 분석한 점이 청중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그동안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어두운 측면만을 생각하고 있었던 청중들에게는 신선한 자극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멀리서 일부러 찾아온 노고와 여비가 보상이 되었다는 서양인 정신분석가도 서너 명 있었습니다.

저는 이번에 국내에서 이루어진 선행 연구들 덕분에 정신분석학에서도 매우 지역적인 것이 국제적으로 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크게 반성을 했습니다. 그동안 서양의 학문인 정신분석학을 국내에 소개하고 정착시켜 발전시키는 데 미약한 힘을 보태다 보니 우리가 가진 전통과 문화 속에 숨어 있는 빛나는 보물을 무심하게 버려두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좀 여유가 생겼으니 우리의 전통문화와 사상을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보다 체계적으로 연구해서 자료를 축적하고 이론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꾸준히 해봐야 하겠습니다. 주변에도 그런 바람이 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동안 죄송했습니다. 하지만 ‘자다가 나는 새가 더 멀리 간다’는 우리 속담을 믿어볼까 합니다.

부쩍 거론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에서 콘텐츠 개발이 진정 중요하다면, 정신분석학은 21세기에도 유망한 분야로 살아남아 더욱더 발전할 겁니다. 사람 이야기에서 무의식, 갈등, 성욕, 공격성, 방어기제 등등을 빼면 남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면 프로이트는 오늘도 살아 우리 곁에서 “내가 옳았지!”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정도언 정신분석학자 서울대 명예교수
#프로이트#정신분석학#오이디푸스 콤플렉스#심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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