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으로 미쳐버린) 아들은 내 주방용 손도끼로 사람을 죽였어요… 아침에 도끼를 가져다 다시 찬장에 넣어놓았더군요. 마치 스푼이나 포크를 다시 제자리에 갖다놓은 것처럼… 나는, 아들이 두 다리 없이 돌아온 그 엄마가 부러워요… 술에 취해 엄마에게 행패를 부려도요. 온 세상을 미워하고…”
소설 등 다른 글에 이렇게 말줄임표가 많았다면 다소 촌스럽고, 조금은 덜 다듬어졌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201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저자(69)의 이 글에서 말줄임표는 저자가 집어넣은 것이 아니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며 벌어진 전쟁에 아들을 보냈던 어머니의 호흡이다. 인터뷰 중 말을 잇지 못하는 어머니의 고통과 흐느낌이 그대로 전해진다.
벨라루스 출신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저자는 5∼10년간 수백 명을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논픽션을 써 왔다. 이 책은 대표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 이어 여성과 소년병의 눈으로 전쟁의 잔혹함을 담았다.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소련 병사 중 상당수가 아직 학생이었다. “사람들은 영화에서와는 전혀 다르게 죽어요. … 실제로는 머리에 총탄이 박히면 뇌가 터져 공중으로 날아가고, 머리가 터진 사람은 그걸 잡겠다고 달려가죠. 한 500m는 족히 달려요. 사람이 죽음이 구원이라도 되는 양 죽여 달라고 간청하는 걸 듣고 또 지켜보고 있느니…”
저자는 책을 내고 3년 뒤인 1992년 아프간 참전 군인과 자신이 인터뷰했던 유가족 어머니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했고 일부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듬해 열린 재판에서 저자는 말했다. “오늘 이곳 법정에 나와 계시기도 한, 그 어머니가 이런 이야길 했습니다. 아연(으로 만든) 관(棺)과 아들이 쓰던 칫솔…을 돌려받았다고요. 그게 아들이 전쟁터에서 가져 온 전부였던 겁니다. … 어떻게 하면 피가 정당화될 수 있을지 방법을 찾고들 계시나요?”
23∼25일 열리는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방한한 저자는 19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소련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정당하다고 속였다. 아프가니스탄 주민 100만 명 정도를 사살했지만 미디어는 입을 닫은 채 병사들을 영웅이라고만 치켜세웠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문학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힘이 있다면 당연히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진실을 보고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책을 쓴 동기를 밝혔다.
저자의 책에는 영웅은 안 나온다. 작고 평범한 이들의 고통만이 그득하다. 저자는 “국가는 ‘스몰 피플(작은 사람들)’을 이용하고 죽였고 또 이들이 죽이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의 역사는 간과되고 있다. 이들의 역사를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쟁에서 아름다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강조했다. “아직도 소비에트 선전선동의 잔재가 남아 있어 ‘무기를 든 사람이 멋있다’는 관념이 있습니다. 전쟁은 그 자체가 살인입니다.”
저자는 23일 오전 10시 반 광화문 교보빌딩 컨벤션홀에서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피해자들을 담은 책 ‘체르노빌의 목소리’에 관한 글(‘미래에 관한 회상’)을 발표한다. “(취재할 때 만난) 나이든 여자분이 잊히지 않아요. ‘햇살도 쨍쨍하고, 꽃도 피었고, 쥐들도 멀쩡한데 내가 왜 이곳을 떠나야 하나요’라고 묻더라고요. 이건 우리가 알던 혼란스러운 전쟁이 아니고, 새로운 형태의 전쟁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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