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서혜림]“엄마, 우리 ‘땅집’ 살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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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 무렵. 말을 아직 잘하지 못하던 시절 어머니를 따라 어머니의 친구 댁에 간 적이 있다. 마침 내 또래의 여자아이가 있어 마당에서 소꿉놀이도 하고 흙먼지 묻은 앵두도 따 먹으며 놀았다. 그 집에는 툇마루와 널찍한 텃밭과 개가 있었다. 하루는 마침 강아지를 낳았다며 꼬물꼬물한 솜뭉치들을 내 작은 손 위에 올려주었다. 아직 말도 제대로 못 하던 때인데도 어제의 일처럼 선명하다. 그때부터 나는 자주 어머니를 졸랐다.

“엄마, 엄마! 우리도 땅집 살아. 응?”

3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대학을 졸업하고 차가운 도시 여자 같은 얼굴을 하고 영어 강사도 하며 일에 치여 살았다. 그렇게 시간을 채워가는 동안에도 가끔 하늘을 올려다볼 때면 하늘마저 건물에 가려져 손바닥만큼만 보이는 삶에 마음이 너덜너덜해져 갔다. 술잔을 기울여 보아도 작은 소주잔만큼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은 점점 견디기 힘들었다.

구원을 얻을 유일한 길은 이곳을 떠나는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던 순간 ‘귀촌’이라는 단어가 나를 집어삼켰다. 어디로 떠나 볼까. 설레는 마음으로 도서관에서 ‘귀촌’ 키워드에 걸리는 모든 책을 다 찾아 읽었다. 아주 현실적인 조언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귀농지를 찾아다니다가 처음 본 지역에 반해 많이 돌아보지 않고 그냥 그곳에 정착한다. 하지만 첫눈에 반하지 말고, 냉정하게 여러 곳을 돌아다녀 보고 정착하라고, 나름의 기준을 세워 놓고 둘러보라고 조언하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일단 농약을 많이 쓰지 않는 지역이고, 젊은 귀촌인이 많으면 좋겠다는 나름의 기준을 세웠다. 그리고 기준에 부합하는 귀농지를 찾아 그 지역에서 열리는 ‘유기농 귀촌학교’에 자비로 참석을 했다. 3박 4일 일정이었는데 정말 빡빡한 강의와 현장답사가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책에서 봤던 조언에 따르지 못하고 첫 번째 방문했던 귀농지에 반해 버렸다. 그렇게 귀농 캠프에 참석한 2015년 9월 4일 나는 그대로 가방 하나를 달랑 메고, 충남 홍성의 어느 귀농인 집으로 입주했다. 그 첫날밤의 설렘은 내 인생 그 어느 첫날밤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땀에 전 새카만 소녀였던 나는 영어 강사를 집어치우고 ‘땅집’을 찾아 홍성에 정착했다. 막상 시골에 오니 내 기억 속에 있던 앵두는 그렇게까지 맛있지 않았고, 텃밭을 가꾼다는 것은 엄청난 노동이 수반되는 힘든 일이었으며, 개를 키운다는 것은 매일 한 생명을 돌보는 귀찮은 일이었다.

짧고 굵게 시골에서 구르며 정착해 가고 있다. 한때는 꿈이었고 지금은 현실이 되어버린 나의 귀촌생활은 어느새 2년 차에 접어들고 있다.

―서혜림

※필자(38)는 인천에서 생활하다가 2015년 충남 홍성으로 귀촌하여 농사 짓지 않는 청년들의 미디어협동조합 로컬스토리를 창립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땅집#귀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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