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칙에 어긋난 식량을 몰래 구축해야 하고, 가급적 노동을 피하고, 영향력 있는 친구를 만들고, 자신을 숨겨야 하고, 특히 생각을 드러내서는 안 되며, 훔치고 속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지 않는 자는 일찍 죽게 된다.―‘릴리트’(프리모 레비·돌베개·2017년) 》
‘잘살고 싶다’라는 말을 습관처럼 입에 달고 산다. 어떻게 사는 게 잘사는 것인지 종종 생각해 본다. 정직하고 선(善)하게, 사회 구성원으로서 규칙을 지키고 사는 게 잘사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나 세상이 너무 가혹하다고 느껴질 때면 그런 다짐은 잊혀진다. 붐비는 출퇴근길 지하철에 딱 하나 남은 자리를 발견했을 때처럼 사소한 순간에도 결심은 쉽게 흔들린다.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대계 이탈리아인이다. 1945년에 자신이 태어난 이탈리아 토리노로 돌아간 레비는 생지옥에서 겪은 경험을 토대로 인간의 폭력성에 대해 썼다. 인간으로서 존엄을 잃은 사람이 얼마나 비참해질 수 있는지, 함께 나락으로 떨어진 이들 사이에서도 약육강식의 법칙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등을 덤덤하게 써 내려간다.
책을 다 읽은 뒤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나치 수용소의 질서나 우리가 살아가는 문명사회의 모습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규칙을 어기면서 부(富)를 쌓고, 일을 하지 않고도 이익을 얻기를 바라며, 학연 지연 혈연에 집착하는 게 대표적 모습이다. 성공을 위해 자신의 본디 생각을 숨기는 것은 물론이고 남을 속이며 훔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레비가 말한 ‘저 밑바닥 세계’는 바로 우리 눈앞에 있다.
국민의 여망 속에 새 정부가 들어섰다. 국민은 새 정부만큼은 과거와 다를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새 정부 내각 후보자들 역시 비뚤어진 사회의 질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게 인사 검증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다. 위장전입 등을 둘러싼 여야 간 공방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후보들의 허물이 민낯을 드러낼 때마다 잘사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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