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현주 맨씨어터 대표(왼쪽)와 배우 이석준은 “극단 식구들끼리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눈빛만 봐도 다 통한다. 연습을 하지 않고 놀면 굉장히 불안해하는 것까지 서로들 닮았다”며 웃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올해 창단 10주년을 맞은 극단 맨씨어터는 ‘믿고 보는 극단’으로 통한다. 배우 우현주(47)가 2007년 친한 또래 여배우 정수영 정재은 등과 만든 이 극단은 ‘썸걸즈’ ‘울다가 웃으면’ ‘디너’ ‘은밀한 기쁨’ ‘데블 인사이드’ ‘흑흑흑 희희희’ 등을 올리며 차곡차곡 신뢰를 쌓아갔다.
다음 달 6일 개막하는 연극 ‘프로즌’ 공연을 앞두고 우현주 맨씨어터 대표와 배우 이석준(45)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24일 만났다. 이 작품은 극단에 각별한 의미가 있다.
“재정난에 시달리면서 2015년 극단을 접어야 하나 고민하던 중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선택한 게 ‘프로즌’이었어요. 예매를 시작하자마자 매진됐고 추가 공연까지 하게 돼 극단을 계속 운영하게 해 준 고마운 작품이에요.”(우 대표)
작품은 소아성애가 있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 랄프(이석준 박호산 이창훈)와 그에 의해 딸을 잃은 낸시(우현주), 연쇄살인범을 연구하는 정신과 의사 아그네샤(정수영)가 출연해 극한의 감정을 오가며 상실과 트라우마, 복수와 용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밀도 있게 고찰했다.
초연 때도 랄프 역을 했던 이 씨는 “센 작품을 많이 했지만 그중에서도 ‘프로즌’은 단연 ‘멘털 갑’이다. 어릴 적 얼마나 학대를 받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를 죽일까 가늠해 보려 하지만 상상력의 한계치를 넘어선다”고 말했다.
두 아들의 엄마인 우 대표는 낸시의 아픔에 너무나 공감하기에 감정을 절제하느라 애쓰고 있다. “절대 겪고 싶지 않은 일을, 극 중이지만 매일 마주하다 보니 고통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아요. 김광보 연출가가 ‘더 깊이 들어가라’고 요구하는데 ‘그러면 난 죽어요’라고 말했을 정도라니까요.”
이 씨는 초연 때 학대당하는 연기에 몰입한 나머지, 자기 뺨을 너무 세게 쳐서 턱관절이 빠지는 바람에 한동안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번에는 사이코패스의 심리로 완전히 넘어가보려 애쓰고 있어요. 완벽한 고통을 맛보겠지만 진심을 담은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거든요.”
맨씨어터는 연출가가 아닌 배우가 만든 극단이기에 배우 중심으로 운영된다. 이 씨를 비롯해 전미도 박호산 등 모두 19명이 활동하고 있다. 남녀 비율은 반반이다. 실력파 배우들이 모인 단단한 극단이 된 데에는 동호회처럼 편하면서도 성실하게 연습하는 분위기를 만든 우 대표의 리더십이 한몫했다. 스타 연출가인 김광보 씨가 한 해에 작품 하나는 꼭 맨씨어터와 하겠다고 약속했을 정도다.
“‘썸걸즈’를 하며 연극배우로서 행복을 맛봤어요. 맨씨어터는 배우로 성장할 수 있게 길을 터주고, 배우 인생을 새로 쓰게 해준 곳이에요. 평생 갚아야 할 것을 받았어요.”(이 씨)
이 말에 우 대표의 눈이 빨개지더니 결국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카리스마 넘치던 무대 위의 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아, 너무 고마워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신진 작가와 함께 성장하며 창작극을 더 많이 올리려고 해요. 시대정신을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10년을 보내고 싶어요.”(우 대표) “지난 10년간 참 즐거웠어요. 작품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삶과 사회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연기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이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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