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편의점이 바꿔놓은 우리 사회 풍속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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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바 ‘촛불 시위’ 때마다 주변 편의점들이 엄청난 특수를 누리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편의점 사회학’(전상인·민음사·2014년) 》

1989년 5월 서울 송파구 올림픽선수촌에 세븐일레븐이 들어오면서 한국에도 편의점 시대가 열렸다. 당시 편의점은 선진국형 구멍가게를 표방했다. 방이동, 동부이촌동, 여의도 등 고학력 중산층이 밀집한 곳에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초창기 편의점은 서구식 생활에 대한 선망을 지닌 젊은 세대의 동경을 적절히 반영한 곳이었다. 어딘가 이국적이란 이미지가 있었던 것. 그 덕에 급격히 성장할 수 있었다. 편의점이 등장한 지 5년 만인 1993년에 점포 수가 1000개를 넘었다.

현재 전국 편의점 수는 3만5000여 곳. 편의점이 일상이 됐다. 이젠 그 누구도 초창기처럼 새로운 생활문화에 대한 동경으로 편의점에 가지 않는다.

저자는 사회에 깊숙이 침투한 편의점을 ‘복합 만능 생활 거점’이라 일컫는다. 생필품을 파는 곳에서 밥을 먹는 곳으로 진화했다. ‘유통 분야에 있어서 정보기술 혁명의 선두주자’이기도 하다. 바코드를 통해 팔린 품목 가격 수량을 정확히 파악하고, 과학적인 진열로 효과적인 판매를 실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편의점의 공동체 생활 거점 기능에 의문을 제기한다. 편의점은 거대 기업이 소유한 프랜차이즈의 점포이자, 지역적인 연계보단 경쟁력 있는 물건 판매에만 집중하는 곳이며, 직원과 교류할 필요 없는 익명의 공간이란 점에서 말이다. 물건을 사며 주인과 손님이 서로의 안부를 묻던 구멍가게와 비교해 보면 편의점의 주인과 손님 관계는 얼마나 삭막한 것인지 확연히 드러난다.

본사와 가맹점 사이, 가맹점주와 알바 사이의 갑을 관계가 첨예한 곳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거대 자본에 대한 반감을 외치며 촛불 시위에 나선 사람들이 시위에 필요한 양초, 우산 등을 편의점에서 사는 현실은 모순이라 지적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편의점을 악(惡)이라 규정하는 건 아니다. 바쁘고 힘겹게 사는 많은 이에게 편의를 주는 긍정적 가치를 결코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나면 편의점을 들를 때마다 편의와 삭막함의 공존이 더 명확히 인식된다.

박은서 기자 clue@donga.com
#사회 풍속도#편의점#전상인#민음사#촛불시위#편의점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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