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 난 이런 식의 책 만듦새를 좋아하지 않는다. 크기는 손바닥만 하고 제목조차 쓰여 있지 않은 표지는 너무 얇다. 책을 펼치니 가정용 프린터로 뽑은 듯한 활자가 여백 없이 빽빽하다. 책 생김새부터가 비주류적인 냄새를 풍기려 너무 애쓰는 듯하다.
책을 집어들 때부터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나는 ‘다원(多元)예술’이라 불리는 경향의 작품을 즐기는 편이 못 된다. 예술의 전통과 관습에 시비 거는 방식을 경계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난 꽤 보수적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택한 건 제목에 끌려서다. ‘미래 예술’이라니 궁금하지 아니한가. 그래, 난 어중간하고 모순적이다. 급진적 파격에 겁을 내면서도 관습적 창작에는 싫증을 느끼니까. 외국 물 좀 먹었다는 사람들이 서양 예술 경향을 수입해 아는 척한다고 못마땅해하면서도 그런 얘기에 자주 귀가 솔깃하니까.
얇고 불안한 표지를 넘기자마자 책 제목이 어디서 온 것인지 설명이 나온다. 연극이론가 앙토냉 아르토가 말했던 ‘미래의 연극’,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이 언급한 ‘미래의 무용’. 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드라마에 대해 언급하기 전에 20세기 모더니즘 개념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에 약간 안도했다.
두 번째 챕터 제목은 ‘연극이란 무엇인가?’. 피터 브룩, 예지 그로토프스키 등 선배 연출가들이 호명되고 연극 연기의 내면, 캐릭터, 재현 개념이 도마에 오른다. 연극 일을 하는 나로서는 그럭저럭 알아들을 만하다.
이어지는 챕터는 ‘춤이란 무엇인가?’ ‘몸이란 무엇인가?’다. 슬슬 어려워진다. 언급되는 작품도 못 본 것투성이다. 활자들이 난해한 퍼포먼스를 벌이기 시작한다.
다섯 번째 챕터는 ‘언어란 무엇인가?’. 여러 음성언어를 아카이빙 했다는 ‘말들의 백과사전―모음곡 2번’이나 이영준의 글쓰기 퍼포먼스가 호기심을 끈다. 이어서 극장이란, 실재란, 관객이란 무엇인가로 이어진다. 정석적인 흐름이다. 미술을 베이스로 한 새로운 개념의 창작도 다루지만, 결국 확장된 개념의 연극 혹은 공연예술로 논의가 수렴된다.
그러니 전혀 못 알아들을 얘기는 아니어야 할 텐데, 현학적인 개념을 동어반복하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불만이 슬금슬금 고개를 든다. 이론서도 평론도 아카이브도 아니라는 저자들의 취지가 곧 이 책의 한계로 남은 건 아닐까.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만들어낸 ‘차연(差延·차이와 시간적 지연)’은 매력적인 말이다. 하지만 책 마지막에 이르도록 내용의 의미 맺음이 유보되기만 한다면…. 내 고루한 감각을 비웃듯 얇은 표지가 찢어지려 했다.
얼마나 이 책을 소화해낸 건지 모르겠다. 알 듯 말 듯한 퍼포먼스를 본 기분이다. 끄트머리에 색인이 있으니 사전처럼 꽂아두고 더러 꺼내봐야겠다. 블랙리스트 같은 옛 시대의 유령으로부터도 놓여났으니, 다시 미래의 예술을 기웃거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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