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적성과 능력에 따라 상당 기간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 직업(職業)의 뜻이다.
그렇다면 작가를 직업이라 할 수 있을까. 독립된 자격으로 계속적이고 직업적으로 창작활동을 하여 얻는 소득은 사업소득이므로 작가는 개인사업자라 하겠지만, 단지 생계유지를 위해 작품을 쓰는 작가는 사실상 없다. 창작에만 전념하고 다른 직업 활동은 하지 않는 전업(專業) 작가도 많지 않다.
1999년 2월 말 전업 작가 30여 명이 강원 동해안 일대를 여행하며 작가의 위상과 문학의 장래를 토론한 적이 있다. 김주영 김원일 이경자 윤후명 박영한 최인석 박상우 심상대 은희경 방현석 한창훈 전경린 한강 등의 이름이 보인다. 당시 좌장 역할을 한 김주영 작가는 “IMF 구제금융 이후 살림의 어려움을 피부로 느끼면서 위축된 전업 작가들이 서로의 고민을 나누며 힘을 얻는 기회”라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작가들이 출판 편집자나 잡지 기자, 글쓰기 지도 강사, 대학 문예창작 교수 직업을 갖고 작품 활동을 병행한다. 소설가 성석제가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여유로운 시간 없이 소설을 쓰려고 하면 카프카 같은 근면함과 재능을 타고나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프란츠 카프카는 법학 학위를 받고 법원에서 일하다가 노동자산재보험공사로 직장을 옮겨 주경야작(晝耕夜作)하였다.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곤충학자로서 1942년 하버드대 비교동물학 박물관에 연구원으로 취직한 뒤 계속 이 분야에서 일하려 했지만, 코넬대 문학부 교수가 된 후로 창작에 주안점을 두었다. ‘어린 왕자’로 유명한 생텍쥐페리와 ‘갈매기의 꿈’으로 널리 알려진 리처드 바크의 직업은 비행사, 소설가 로맹 가리는 공군 조종사와 외교관이었다. 미국 작가 에릭 호퍼는 떠돌이 일꾼과 부두 노동자 생활을 했고, 우리나라 시인·평론가 임화는 영화배우로 활동하며 주연을 맡기도 했다.
작가의 직업 배경이 작품 세계를 뒷받침하는 경우도 많다. 변호사 출신 존 그리셤은 법정 소설, 안과의사 출신 로빈 쿡은 의학 스릴러, 영국 정보부와 외교부에서 일한 존 러카레이는 첩보 소설의 대가이며,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 가운데는 20년 선원 생활 경험을 반영한 것들이 많다. 이렇게 보면 작가라는 직업은 다른 모든 직업들을 문학적 상상력의 단서와 이야기 소재로 삼을 수 있는 독특한 직업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업 작가라 하더라도 작가의 직업은 늘 둘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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