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은 단독으로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신화의 배경, 종교적 사건의 무대였지요. 특히 종교화 속 험난한 계곡과 좁은 길 등은 상징을 담고 있었어요. 그러다 점차 풍경이 종교적 의미와 거리를 두다가 독립적 주제로 다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풍경화가 확고한 장르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그림 속 인물은 비중이 축소되었습니다. 크기가 차츰 줄어들더니 화면에서 사라져 버렸지요. 처음 풍경화는 자연의 외관을 색채와 형태로 재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어요. 한편 변화무쌍한 대자연의 존재와 위력을 개성적 시각과 사유로 표현하려고도 했지요. 또한 변화무쌍한 자연의 본질을 예술적으로 포착하려고도 했답니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역시 풍경에 주목했습니다. 거룩한 풍광보다 일상 풍경을 즐겨 그렸어요. 아름다운 자연의 겉모양이나 불가사의한 질서에는 예술적 관심이 없었거든요. 풍경과 마주한 순간 인간이 느끼는 감정 상태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려 했지요.
프랑스 파리 북쪽 소도시, 오베르는 화가의 마지막 안식처였습니다. 37세에 생을 마감한 화가의 마지막 70일은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작은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여러 점의 풍경화를 그리며 대부분 시간을 보냈지요. ‘오베르의 초록 밀밭’도 이 시기 제작되었어요.
자신에게 남은 두 달 남짓 시간을 예감하지 못했을까요. 그림 속 세상은 생기와 활력이 넘칩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무렵 화가는 밀밭에서 계절의 파편들을 목격했겠지요. 하지만 하늘과 구름, 밀과 꽃을 유기적 색채로 연결시켜 풍경에 통일성을 부여했습니다. 동네 교회 색유리에서조차 먼 바다의 푸른빛을 상상했던 화가는 상투적인 색채 사용을 자제했어요. 풍경과 마주한 순간 인간의 감정 상태와 내면세계를 주관적 색채로 표현하려 했지요.
오랜만에 낮 시간에 공원을 산책했습니다. 햇볕은 쨍하고 바람은 선선하더군요. 쏟아지는 태양빛과 움직이는 바람결에 세상은 반짝이며 너울댔습니다. 모처럼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고 싶어서였겠지요.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하늘이 무슨 색깔인지 구태여 결론 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멀리서 바라본 풀들을 움직이는 자연의 힘과 근원도 한사코 파고들지 않기로 했어요.
‘그림을 그리면서 나 자신을 발견한다.’ 대신 이맘때 풍경을 그린 화가가 동생에게 쓴 편지 속 문구처럼 초여름 풍경이 일으킨 마음의 파장에 온전히 집중하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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