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욱 PD는 “정치 풍자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곳곳의 병폐를 개그 소재로 다루고 싶다”는 욕심을 내비쳤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캐리어를 보지 않는 노 룩(No Look) 자세와 함께, 은발의 안경화 외모부(외교부의 패러디) 장관 후보자(안영미 분)가 등장한다. 모든 답변에 “인도주의적으로∼”를 외치는 말투…. 지난달 27일 방송된 tvN ‘SNL 코리아 시즌9’의 첫 장면이다.
이뿐만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이 프로그램에선 유머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독한 풍자 개그로 돌아온 SNL 코리아의 총연출을 맡고 있는 권성욱 tvN PD(40)를 5일 서울 마포구 CJ E&M 사옥에서 만났다.
권 PD는 “풍자 코너를 다시 시작했을 때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SNL 코리아’는 그동안 부침이 심했다. 2013년 풍자 코너 ‘여의도 텔레토비’가 박근혜 정부 출범 후 4개월 만에 돌연 폐지되면서 외압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달라진 것은 지난해 가을 불거진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이후부터다. 최서원(최순실)을 패러디한 최서운(김민교 분) 캐릭터가 등장해 큰 인기를 얻었다. 본격적인 대선정국에선 각 후보를 패러디한 문재수, 레드준표, 안찰스 등이 실제 후보들만큼 주목을 끌기도 했다. 권 PD는 “결국 대중이 가장 원하는 유머 코드가 정치 풍자였다. 자연스럽게 관련 코너가 증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SNL 코리아의 특징은 고정으로 출연하는 크루(고정멤버)들의 익살스러운 패러디 연기다. 김민교, 정상훈, 권혁수 등 출연진이 선보이는 풍자는 인터넷 클립(짧은 영상)으로 다시 유통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권 PD는 “회의를 시작할 때마다 MC인 신동엽 씨가 ‘우리 삐지지 말자’고 항상 말한다. 막내든 최고참이든 웃음을 기준으로만 아이디어를 판단한다. 꼭 풍자가 없더라도 곳곳에 유머 코드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것이 SNL의 힘”이라고 말했다.
최근 수년간 한국 방송 프로그램에서 풍자 코미디는 자취를 감췄었다. 정부의 입김 때문이었을까. 권 PD의 진단은 다르다. “권위주의 정권 시설에도 김형곤 씨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같은 풍자 코너가 제일 인기였다. 가장 재밌었기 때문이다. 풍자뿐 아니라 방송 코미디가 대중의 유머 코드에 부응하지 못한 면이 있다.”
한국 방송 코미디의 현실은 암울하다. SBS의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 지난달 31일 폐지됐고, KBS의 ‘개그콘서트’는 최근 자체 최저시청률을 경신 중이다. 권 PD는 “뉴스가 코미디 같은 현실이라 코미디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적어진 측면이 있다”며 “새로운 코너와 스타를 계속 배출해 시청자들에게 사랑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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