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영월군에 가면 라디오스타 박물관이 있다. 이곳은 원래 영화 ‘라디오 스타’(2006년 개봉)의 촬영 주무대였던 옛 KBS 영월방송국이었다. 그 영화와 함께 라디오를 추억하기 위해 2015년 박물관으로 다시 꾸민 것이다. 박물관엔 다양한 라디오들이 전시되어 있고, 직접 DJ가 되어 라디오 방송을 진행해 볼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라디오 방송이 시작된 것은 1927년. 일제가 서울 정동에 최초의 라디오 방송국인 경성방송국을 설립하면서부터다. 라디오 방송은 1960, 70년대에 전성시대를 구가했다. TV가 귀했던 시절, 온 가족이 한데 모여 열심히 라디오 드라마를 들었고 성우라는 직업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홍수환 유제두의 프로권투나 김재한 차범근의 축구, 인기 절정 고교야구 경기도 대부분 라디오로 들었다. 한 장면 한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세상과 만났고, 한편에서는 라디오 심야음악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누렸다.
라디오의 흥행에는 국산 라디오가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59년 금성사는 처음으로 국산 라디오 생산에 성공했다. 부품 국산화율 60%. 모델명은 ‘금성 A-501’. 5개의 진공관과 5인치 스피커를 장착한 최초의 진공관식 라디오였다. 가로로 길쭉한 모양에 두 발이 달렸고, 앞면엔 금성사 심벌과 함께 붉은색으로 ‘Two Band Super Heterodyne’ 문구를 디자인해 넣었다. 지금 보면 투박하지만 당시로서는 세련된 디자인이었다. 우리나라 산업디자인의 시발점으로 평가받으며 훗날 국산 라디오 디자인의 모델이 되었다.
1990년대 이후 영상매체의 득세에 라디오는 주류에서 밀려났다. 사라질 듯했지만 지금도 도처에서 우리와 만나고 있다. 유명 방송사의 라디오 방송은 물론이고 지역별 마을 방송, 라디오 카페가 성업 중이다. 충남 공주의 산성시장에 가면 상인들이 운영하는 시장 라디오 방송국이 있다. 올여름 피서철엔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서 라디오 방송을 진행한다고 한다. 옛날 스타일의 라디오 기기는 사라졌지만 라디오 문화는 여전한 셈이다.
라디오 하나로 온 세상을 꿈꾸었던 시절. 그 흔적 가운데 하나가 첫 국산 라디오 ‘금성 A-501’이다. 서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전시 중인 이 라디오는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다. 라디오 자체의 고풍스러움뿐만 아니라 거기 담겨있는 사람들의 숱한 애환 때문이다. 1959년 금성 라디오의 소리까지 복원해 들어볼 수는 없을까. 그런 꿈을 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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