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혼밥’이 유행이고 심지어 혼술도 흔한 일이지만 예전에는 순댓국을 먹으러 여성 혼자 식당에 가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었나 봅니다. 말하자면 순댓국을 땀 냄새 풀풀 나는 사내들만의 원초적 음식이라 여겼던지 어느 시인은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뜨거운/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혼자라는 건/실비집 식탁에 둘러앉은 굶주린 사내들과/눈을 마주치지 않고 식사를 끝내는 것만큼/힘든 노동이라는 걸/고개 숙이고/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최영미 시인의 ‘혼자라는 건’에서)
순댓국 한 그릇을 온전히 비우기 위해 시인이 겪은 곤혹스러움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지만, 요즘 여성 혼자서 오거나 순댓국이 처음이라 두렵다며 남자친구를 이끌고 오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신세대 여성들의 입맛에 맞게 순대요리가 다양하게 변주돼 더욱 인기가 높습니다.
순대는 예전부터 백암순대, 병천순대와 속초 청호동 함경도 아바이순대가 3대 순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제주도 순댓국과 속초 오징어순대도 빠뜨리면 아쉽습니다. 명태가 잡히지 않아 명맥이 거의 끊긴 동해 북부의 명태순대는 최근 방류한 치어들이 성어가 되어 돌아온다면 다시 맛볼 수 있겠다는 기대도 가져봅니다.
각 지역의 순대를 구별할 때 작은창자 또는 큰창자를 쓰느냐, 동물의 피를 많이 또는 적게 넣느냐, 머리뼈 같은 것은 얼추 또는 완전 갈아 넣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또 당면, 찹쌀, 숙주, 양배추, 파, 마늘 등 내용물의 종류와 양에 따라 워낙 제각각입니다. 냉면집마다의 독특함을 인정하는 것처럼 ‘그날 그 식당’을 찾은 숙명이겠거니 하고 먹으면 마음이 한결 편할 것입니다.
특이하게도 백암순대는 머리고기를 대충 갈아서 넣습니다. 씹는 맛은 제법 좋지만 운이 없는 경우엔 치아가 부러질 수도 있어 의자에 ‘이빨 조심’이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더군요. 치과의사 입장에서 마냥 웃을 수도 없는 일이지요.
순대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갑자기 순대 특유의 냄새가 떠오르며 배고픔이 밀려옵니다. 사실 순대 냄새란 것이 고단한 현실 때문에 잊고 살았던 ‘사람 간 정(情)’의 또 다른 이름이겠지요. 빨리 글을 마치고 허기진 정을 채우러 인근 순댓국집으로 달려가야겠습니다.
석창인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s2118704@naver.com
○ 순대실록 서울 종로구 동숭로길 127, 02-742-5338, 순댓국 7000원, 수육 2만5000원 ○ 제일식당 경기 용인시 처인구 백암로201번길 11, 031-332-4608. 순댓국 7000원, 모둠순대 1만5000원 ○ 충남집 충남 천안시 동남구 충절로 1748, 041-564-1079. 순댓국 7000원, 순대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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