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학부모님들과 법적 보호자님들께.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 넷플릭스의 최근 드라마 ‘열세 가지 이유(Thirteen Reasons Why)’가 중고교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고생의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는 청소년기의 민감한 정신건강 문제를 너무 자극적으로 묘사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를 본 자녀와의 대화 방법 등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학교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교장 올림.”
얼마 전 아이들이 다니는 미국 뉴욕의 공립학교로부터 이런 e메일을 받았다. ‘열세 가지 이유’와 관련한 청소년 심리학자들의 조언도 첨부돼 있었다. 학부모에겐 “자녀들의 발언에 대해 옳고 그름을 먼저 판단하지 말라. 당신(학부모)의 생각을 접어놓고 일단 무조건 집중해서 경청하라” 같은 대화 요령을 소개했다. 학생들에게 “지금 겪는 문제들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 그러나 자살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다. 따라서 절대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드라마의 원작은 2007년 출간됐던 같은 제목의 소설. 작가 제이 애셔(42)는 인터뷰에서 “소설을 쓸 때 ‘나중에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면 시각적으로 굉장히 강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고 말했다. 3월 31일 공개된 드라마는 작가의 예상보다 더 강력했다. 10년 만에 재출간된 책은 곧바로 베스트셀러 청소년 소설 부문 1위를 휩쓸었다. 인기가 높아질수록 우려도 커졌다. 사실상 전국 중고교엔 ‘열세 가지 이유’ 경계령이 내려졌다.
여주인공 해나는 자신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한 13명의 이야기를 7개 카세트테이프 앞면과 뒷면에 각각 녹음했다. 그 13명은 해나를 성폭행한 부잣집 아들, 여러 방식으로 따돌림의 괴롭힘을 줬던 학교 친구들, 고민을 토로한 자신에게 “전학 가는 것이 가장 손쉬운 해결책”이라고 조언한 상담교사 등이다. 자신의 주위를 맴돌면서도 끝내 사랑 고백을 못 한 모범생 남자 주인공(클레이)도 포함된다. 이들은 송신자 불명의 소포로 전달받은 해나의 카세트테이프를 듣고는 두려움과 죄책감에 시달린다. 클레이조차도 “왜 내가 살아 있을 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어?”라고 묻는 해나의 환영(幻影)에 괴로워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이야기 구성이 ‘자살이 나를 괴롭혔던 사람들에 대한 보복이 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청소년들에게 줄 수 있다”고 비판한다. 반면 드라마 제작진은 “자살 장면을 아주 상세히 묘사한 이유는 의도적으로 시청자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서였다. ‘절대 시도조차 해선 안 되는 일’이란 교훈을 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각급 학교에선 이 소설과 드라마를 계기로 청소년의 심리 갈등, 집단 따돌림, 자살 충동 등에 대한 해법 마련을 위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고 공영 라디오방송 NPR는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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