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믿고 보는 메리 비어드의 로마사 책이다. 전작 ‘폼페이, 사라진 로마 도시의 화려한 일상’에서 보여준 상상력과 탁월한 미시사적 접근은 이 책에서도 여전하다. ‘폼페이…’가 로마 변방도시 주민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그렸다면, 이 책은 로마세계 심장부에서 벌어진 권력자와 시민들에게 초점을 맞춰 대조를 이룬다. 이 책과 함께 ‘폼페이…’를 읽는다면 로마 중심과 주변 속주의 실태를 폭넓게 파악하는 덤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비어드는 고대 라틴어를 전공한 영국인 여성 고전학자로, 로마사 연구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특히 발굴 현장을 누비는 연구자답게 방대한 문헌과 고고 자료를 인용하며 로마인의 삶을 복원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마치 영화나 소설을 보듯 역사 현장에서 관련 인물들의 움직임과 주변 정황을 생생하게 포착한다.
책의 서두를 열고 있는 ‘카틸리나 음모 사건’이 대표적이다. 로마 공화정을 이끈 대정치가 키케로와 그의 숙적 카틸리나가 처한 상황과 이들의 선택이 구체적으로 묘사됐다. 특히 일반적인 통사(通史)류가 그러하듯 로마 기원인 로물루스와 레무스로 페이지를 열지 않고 카틸리나의 반란을 끌어들인 게 의미심장하다. 이 사건은 대량살상무기와 테러로 얼룩진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 즉 ‘국가 안전을 위해 개인의 기본권은 어디까지 침해될 수 있는가’를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명문가 후손 카틸리나는 집정관 선거에서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도 지방도시 출신의 신출내기 키케로에게 지고 만다. 연이은 선거 패배로 파산한 카틸리나는 사병을 동원해 키케로를 암살하고 로마공화정을 전복시킬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사전에 정보를 입수한 키케로는 원로원에서 카틸리나의 음모를 폭로한 뒤 반란 가담자들을 재판도 없이 모두 처형한다. 그러나 키케로는 ‘로마시민은 누구나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대원칙을 저버렸다는 반발에 부닥쳐 결국 로마에서 추방되고 만다.
로마공화정 말기 일어난 카틸리나 사건은 이후 로마제정기 황제들에 의해 원로원의 위상이 형편없이 추락했다는 점과 맞물려 적지 않은 상징성을 갖는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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