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수도는 정치, 경제뿐 아니라 문화의 중심지다. 서울 역시 마찬가지다. 그동안 한국 문학의 수많은 작품에서 서울은 주 무대이자 핵심 주제 그 자체이기도 했다. 하지만 ‘문학 도시’ 서울로서의 연구는 그동안 많지 않았던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은 이상, 이광수, 박태원, 김수영, 박완서 등 서울에서 활동했던 문인 10명의 행로를 추적하며 시와 소설의 도시로서의 서울을 탐구한다.
저자는 서울대 국문과 교수이자 고교 문학 교과서의 저자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후 8년간의 문학사를 주로 연구했기에 책에 소개된 저자들 역시 이 시기의 작가들에 맞춰져 있다.
책은 서울의 익숙한 장소에서 문학사적 의미를 끄집어낸다. 시인 윤동주는 1941년 서울 누상동(현 종로구 사직동 일대) 9번지 하숙집에서 5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머무르면서 10편의 시를 썼다. 이곳에서 매일 인왕산을 산책하고, 하숙집에 놀러 오는 다양한 문인들을 접촉하며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로 등하교한 일상이 그의 순수한 시 세계를 형성한 원동력이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1910년 서울 청계천 가에서 태어난 소설가 박태원은 하루가 다르게 신축물이 세워지는 경성 한복판에서 자라났다. 그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구보가 전차를 타고 옮겨 다니는 경성역, 미쓰코시백화점 등은 모두 박태원에게 가장 친숙한 공간일 수밖에 없었다.
서울이라고 해서 4대문 안 옛 서울에 국한하지 않는다. 서울 마포구 구수동 일대에 거주했던 김수영 시인에게서 체제의 구속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저항정신을 읽고, 소설가 손창섭이 1960년대 당시로선 외딴 지역이던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 머무른 덕분에 한국 사회를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고 본다.
책은 구어체로 서술돼 있어 책장을 넘길 때마다 수준 높은 대학 강의를 듣는 기분도 들게 한다. 일상의 공간으로만 여겼던 서울을, 한국 문학을 빛낸 작가들과 함께 숨쉬는 역사적 장소로 느끼게 해줄 매력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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