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ps!… I Did It Again’ ‘…Baby One More Time’ 등으로 1990∼2000년대 높은 인기를 누린 미국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36)가 10일 밤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내한공연을 열었다. 2003년 음반 홍보차 내한한 적이 있지만 정식 콘서트는 이번이 처음이다.
스피어스의 골수팬이라면 아쉬울 것 없는 무대였다. ‘Toxic’ ‘I‘m a Slave 4 U’ 등 대표곡 대부분을 90분 동안 들려주며 추억을 소환해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처음으로 브리트니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음악을 즐기는 것으로 족하다면 괜찮았다. 다만, 한 시대를 풍미한 대형 팝스타의 공연을 경험한다는 기대로 온 관객들에겐 턱없이 부족한 무대였다. 집에서 좋은 오디오·비디오 시스템으로 전성기 콘서트 영상물을 감상하는 게 나을 뻔했다.
스피어스는 2013년부터 해온 호텔 쇼 무대를 고스란히 가져왔다. 그가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플래닛 할리우드’ 호텔 내 4600석짜리 극장에서 진행 중인 쇼 ‘브리트니: 피스 오브 미’다. 한국 일본 등지를 도는 이번 아시아 투어는 곡 순서와 무대 연출까지 ‘…피스 오브 미’의 판박이다.
가창은 100퍼센트 립싱크였다. 안무를 하면서 스피어스는 오른쪽 뺨에 늘어뜨린 무선 마이크를 향해 입을 달싹였지만 ‘Slumber Party’ 등의 곡에서 순간순간 입 모양과 노래가 따로 놀았다. 발라드곡 한 소절이라도 피아노 반주에 맞춰 직접 불렀다면 팬들의 감동도 더했을 것이다.
남은 볼거리는 스피어스가 10여 명의 무용수와 함께 펼친 안무. 이마저 화려한 케이팝 안무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허리를 숙였다가 돌고래처럼 들거나 순간적으로 쭈그려 앉아 다리를 쭉 펴는 동작을 제외하면 팔다리를 기계적으로 움직이며 소극적으로 터는 수준에서 멀리 나아가지 못했다. 음향도 좋지 않았다.
공연 운영도 거칠었다. 퇴장하는 관객의 동선 확보를 위해 1, 2층 객석 사이에 마련한 몇 개의 임시 계단은 위험천만했다. 난간은 한 손으로 흔들어도 휘어질 정도로 약했지만 만약의 사태나 몸이 불편한 관객에 대비한 안전요원은 배치되지 않았다. 공연을 앞두고는 경호업체의 한 직원이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양× 때문에 고생하네’란 글을 올렸다 누리꾼들의 뭇매를 맞고 사과했다.
주최 측은 공연을 ‘7세 이상 관람가’로 고지했지만 무용수가 무대 위에서 담배 피우는 흉내를 내거나, 스피어스가 무대로 불러올린 관객에게 목줄을 건 뒤 끌고 다니며 채찍질하는 연기를 하는 등 선정성이 높았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앞서 이 공연에 대해 ‘(연소자) 무해’ 판정을 내렸다. 해외에서도 이 공연은 ‘6세 이상 관람가’로 진행되고 있지만 그간 레이디 가가, 에미넘 등 직설적인 가사나 성적인 내용이 포함된 공연이 국내에서 ‘유해’ 판정을 받은 것과 비교하면 형평성 논란의 소지가 있다.
이번 공연은 중국 자본의 한국 콘서트업계 진출 시험대였다. 중국에 본사를 둔 아이디어뮤직엔터테인먼트(iMe)가 주최·주관하고 ‘중타이스페셜파이낸싱(中泰創展)’이 공동협력사로 참여했다. 한국지사를 통해 처음 진행한 이번 공연은 그러나 총체적 난국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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