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드갈의 한국 블로그]가장 평등한 공간, 한국의 커피가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3일 03시 00분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벗드갈 몽골 출신 서울시립대 대학원 행정학과 재학
벗드갈 몽골 출신 서울시립대 대학원 행정학과 재학
한국에서 산 지 수년이 되는 나에겐 유일한 낙이 바로 커피다. 처음 유학 왔을 때와 비교하면 커피 값이 많이 떨어졌다. 전에는 커피가 비싸면 맛있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이제는 저가임에도 불구하고 맛이 뛰어난 커피 가게들이 늘어나 커피 애호가들을 즐겁게 한다. 그 덕분에 나 같은 커피 마니아들이 커피를 전과 달리 부담 없는 가격에 마실 수 있어 행복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커피숍을 사람들이 자주 찾는 이유도 이제 다양해지고 있는 것 같다. 고급 레스토랑이나 뷔페에 가려면 옷을 어느 정도 갖춰 입고 가야 하지만 커피숍은 다르다. 내가 편한 복장을 입어 내 지갑 속에 들어있는 돈과 상관없이 좋은 분위기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고마운 곳으로 변했다. 즉,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한데 모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것 같다. 그 공간에서 미화원, 사장, 공무원, 회사원, 변호사, 교수 등 여러 사람과 함께 즐길 수 있다.

우리 집 근처에 작은 마트가 있다. 그 가게에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있다. 그녀는 평상시에 표정이 하나도 없다. 아이 손을 잡고 그곳에 가서 간식을 사는 일이 흔하지만 그녀가 밝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아주머니의 출퇴근 시간에 가끔 마주칠 때도 있지만 그 사람은 세상에 관심이 없는 듯 항상 무표정이다. 입는 옷도 변함없고 표정도 변함없는 아주머니의 얼굴에는 우울함도 보이곤 한다.

그런데 최근 그 아주머니를 유명 브랜드 커피숍에서 봤다. 바로 내 옆자리였다. 그분은 나를 알아볼 것 같지 않지만 나는 잘 알아봤다. 평상시 얼굴과 달리 편안함과 미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분이 주문한 음료와 간식비를 최저임금으로 따지면 두 시간은 일을 해야 나올 것 같았다. 그분을 발견하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커피가게라는 곳이 보이지 않는 차별 없이, 출신 및 소속과 상관없이 사회 모든 계층이 모일 수 있고 또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고.

차를 즐겨 마셨던 한국에 처음 커피가 들어온 것은 고종 때인 1882년이라고 들었다.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에 잠시 머무는 동안(아관파천) 커피의 매력에 빠졌다고 한다. 그 덕분에 한국에서 1902년쯤에 백성들을 위한 최초의 커피가게가 열렸다는 이야기를 바리스타 학원을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한국 경제 성장이 급속했던 것처럼 커피문화 또는 커피와 관련한 모든 것도 급성장하였다. 물론 그 가운데에 많은 사건이 있었겠지만 1999년에 서울 이화여대 근처에 세계 유명 브랜드 커피가게가 1호점을 열기 시작하면서 조금 더 성숙된 커피시장과 문화가 등장했다. 오늘날 커피에 관한 모든 것이 보편화되는 데 20년 정도의 기간이 걸렸던 것이 아닐까. 그동안 커피라는 존재는 현대인들에게 너무나 고마운 것으로 변했다. 특히 나같이 커피가 너무 좋아서 커피를 배우러 다니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을 주변에서 흔히 보게 된다.

맛있는 커피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 못지않은 일상의 행복으로 변했다. 필요한 것을 찾으러 잠시 동안 생각에 잠기고 싶을 때 내게는 커피숍이 제일 적합한 장소인 듯하다. 몇 년 전부터 커피가게 공간들이 아늑하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내 집보다 편하고 좋을 때가 많다. 커피는 생각을 정리하는 데, 마음의 안정을 찾는 데에 있어서 고마운 존재이다. 커피가게는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계층이 한 공간에서 마음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아닐까. 커피가게 같은 장소들이 우리 사회에 많이 존재한다면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깊어질 듯하다.

벗드갈 몽골 출신 서울시립대 대학원 행정학과 재학
#커피#커피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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