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모의고사를 본 은수는 결과를 받아 보고 무척 실망했다.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성적이 목표만큼 나오질 않았다. 아빠는 풀 죽어 있는 아이가 짠해서 어깨를 두드리며 “너 잘할 수 있어. 이렇게만 하면 다음에는 1등도 하겠네”라고 위로했다. 그런데 아빠의 말에 은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1등? 제가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요? 수학은 석재가 저보다 조금 더 잘하고 국어는 동규가 조금 더 잘하는데요.”
그저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단어가 가득한 위로가 의외로 상대에게 도움이 안 될 때가 있다. 아이에게는 특히 그렇다. 아이는 부모의 위로로 세상을 배우고 내면의 기준도 잡아가기 때문이다. 위로는 마음을 담아 되도록 진솔하게 해야 한다. 은수는 정확한 성격의 아이다. 아이의 속상한 마음을 수긍해주고, 아빠가 말한 1등의 의미를 다시 설명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인간관계나 성취 등에서 마음 아픈 경험을 하게 된다. 누구도 삶에서 그런 경험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이럴 때 부모가 할 일은 불편한 감정이지만 아이가 그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그 감정을 스스로 다루어 내도록 돕고 더불어 내면의 기준이 될 수 있는 솔직한 인생의 조언을 주는 것이다.
아이가 친구의 모진 말에 상처를 받았다면, “친구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잖아. 그 친구가 한 말이 옳은 말인지 잘 생각해 봐. 아닌 것 같으면 그 영향을 받을 필요가 없는 거야. 물론 기분이야 나쁘지. 그러나 이 세상에는 옳지 않은 말을 하는 사람이 참 많거든. 그때마다 이렇게까지 아파할 필요는 없는 거야. 네가 생각했을 때 뭐가 옳은 방향인 것 같으니?”라고 말해준다.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 “그렇게 하도록 해. 네 생각을 한번 점검해 보고 그쪽으로 가면 되는 거야”라고 해준다.
아이를 위로해야 하는 순간, 많은 부모는 아이가 너무 상처를 받을까 봐, 기가 죽을까 봐, 실망할까 봐 지레 겁을 먹고 그 감정을 외면해 버리거나, 빨리 해결해 버리려고 한다. “괜찮아. 괜찮아. 걔가 나쁜 애야. 잊어 버려. 우리 기분도 꿀꿀한데 피자나 시켜 먹을까?” 하는 식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아이가 힘들어할 때 부모 본인에게 생기는 감정을 못 다뤄내기 때문인 면이 크다. 아이가 불편한 감정을 빨리 털어내고 얼른 방긋 웃기를 바라는 것은 사실 본인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감정 발달을 도우려면 어떤 종류의 감정이건 그 감정을 충분히 경험한 다음 그 감정을 처리하거나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려면 아이가 그 감정을 견딜 시간을 주어야 한다. 힘들어하는 아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기도 해야 한다.
안 맞는 친구로 인해 괴로워할 때도 “그 사람도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일 거야” 또는 “걔가 잘 몰라서 그렇지, 조금만 더 지나면 네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알게 될 거야”라고 위로하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있는 집단에는 좋지 않은 사람도 있어. 물론 아주 많진 않은데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해.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너는 괜찮은 사람이지. 집단 안에서 정말 너랑 안 맞고 좋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그 사람의 기준에 너무 좌우되진 마라.” 이렇게 얘기해주는 것이 오히려 나을 때도 있다.
요즘 아이들은 예쁘지 않은 것으로도 좌절하기도 한다. 한 초등학생이 물었다. “원장님, 저 못생겼지요?”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너는 지나가는 사람이 돌아보면서 ‘우아 예쁘게 생겼다’ 할 정도는 아니야. 그러나 너 귀여워. 웃는 게 얼마나 예쁜데. 또 착하잖아. 마음씨가 곱잖아. 사람은 내면이 더 중요한 거야. 그리고 사람은 오래 보면 예뻐 보여. 친한 사람은 자주 보잖아. 나랑 친한 사람한테 예뻐 보이는 것이 중요하지, 네 인생에 상관없는 지나가는 사람 눈에 예뻐 보이는 것이 중요할까?” 아이는 “결국 안 예쁘다는 말이잖아요”라고 입을 삐죽거리다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한 고등학생은 “저 납작코죠?”라고 물었다. “어. 그런데 네 얼굴에 잘 어울려”라고 대답했다. 아이는 그래도 코를 세우는 성형수술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정 그렇게 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겠으면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에 하라고 조언했다.
나는 부모가 언제나 자연스러웠으면 좋겠다. 요즘 부모들은 너무 잘하려고 애쓰다 보니까 매 순간이 지나치게 과장된다. 너무 자연스럽지 않고 경직되어 있다. 위로도 그런 경향이 있다. 아이에게 정말 힘이 되는, 좀 더 자연스러운 위로, 진심을 담은 위로를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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