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비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프랑스어로 대뜸 세 단어를 말했다. 그는 프랑스 명품 에르메스의 플로리앙 크랭 부회장. 지난달 서울 강남구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가 새 단장을 마친 것을 기념해 방한한 그를 채광이 멋진 황금 빛 ‘메종’에서 만났다.
한국 소비자에게 ‘메종의 문을 열고 들어올 것’을 권한 그는 “가끔 우리 브랜드가 주눅 들게 하기도 하고, 고객이 선뜻 매장에 들어오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열린 메종이 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거리낌 없이 이곳에 들어오라니.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다소 ‘용기’가 필요한 일일 수도 있다. 아름다운 쇼윈도를 들여다보다가도 직원과 눈을 마주치면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의기소침해지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에르메스는 도도한 ‘럭셔리’가 아닌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장인 기업이라고 외친다. 예술과 위트, 장인정신이 어우러진 브랜드의 정신이 메종에 녹아 있으니 와서 나누자는 얘기다. ―일단 들어오라니, 많은 이에게 용기를 준 것 같다.
“도산 매장은 미학과 문화에 관심이 있는 모든 이를 위한 공간이 되고자 한다. 문화 행사가 많고, 카페도 있다. 그것이 우리 브랜드의 정신이다. 고객이든 아니든 처음 에르메스의 문을 연 사람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다양한 색상, 창조물, 예상치 못한 물건들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문을 밀고 들어오면 된다!”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가 변신을 마쳤는데 어디에 중점을 뒀나.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가 2006년 첫선을 보인 지 올해 11년이 됐다. 설계 디자인 자체는 2003, 2004년 무렵에 했으니 거의 14, 15년 된 셈이다.
한국에서 에르메스는 꾸준히 성장했고, 우리는 고객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새로 늘어난 카테고리(홈, 신발, 주얼리, 의류)를 우리 매장에서 보여줄 공간이 필요했다. 이번 레노베이션으로 채광이 훨씬 좋아졌고, 고객이 앉아서 시간을 보낼 자리도 늘어났다.”
―남성코너가 1층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에르메스의 모든 매장은 서로 다르다. 우리 고객이 매장에 들어와서 다른 곳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메종 도산은 1층에 남성의 세계(Men’s Universe)를 만들고자 했기 때문에 남성과 관련된 모든 것, 그리고 시계와 주얼리를 진열했다. 2층은 여성의 세계(Women’s universe), 3층은 홈의 세계(Home universe)를 구현했다.”
―메종 도산파크는 전 세계 에르메스의 4번째 메종이다. 왜 서울이고 도산공원이었나.
“1997년 처음 한국에 진출하고 2, 3년 만에 (도산공원 앞) 부지를 매입했다. 한국시장이 매우 중요한 시장이 될 것이라는 비전이 있었고, 실제로 에르메스의 해외 시장 중 성장률이 좋은 나라 중 하나였다. 지금의 한국 시장을 보면 대단한 선견지명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당시 어떤 목적지를 창조하고 싶었다.
큰 도로변을 조금 벗어나서 우리 방문객, 손님, 예술가, 언론인들에게 완전히 다른 수준에서 에르메스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랬다. 그래서 도산공원 앞을 택했다. 보통 럭셔리 브랜드들이 자리 잡은 곳을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한국에 면세점도 많이 생겼는데, 매장을 좀더 늘릴 계획은 없나.
“우리는 언제나 선별적인 유통을 강조해 왔다. 멋진 매장을 원하지 여기저기 수를 늘리는 게 목표가 아니다. 한국 진출 후 20년 동안 공항을 제외하고 10개 매장을 열었다. 거의 2년마다 하나씩 늘어난 셈이다. (시장은) 계속 성장하겠지만 (매장을) 더 이상 늘릴 계획은 없다.”
―세계적으로 럭셔리 시장이 불황이지만 에르메스는 꾸준한 성장세다.
“아마 이 질문은 저희 고객이 답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다.(웃음) 에르메스 역사상 언제나 위기 속에서도 잘해왔는데, 이는 아마도 고객이 신뢰를 갖고 있고 ‘다른 것을 덜 사더라도 좋은 것 하나는 사겠다’라는 태도를 가져줬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신뢰를 쌓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름다운 물건을 만드는 것, 최고의 질과 최고의 재료를 자랑하는 것이다. 말은 싶지만 실행이 어렵다. 우리는 마케팅보다 제품에 가장 신경을 쓴다.” ―왜 제품을 많이 만들지 않나. 수요에 공급을 맞출 순 없나.
“최근 에르메스 실적을 보면 우리가 생산력을 많이 끌어올린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직원 중 아틀리에서 일하는 장인의 비중이 가장 높다. 현재 프랑스에서 4300명의 장인이 일하고 있고, 매년 200∼300명의 장인을 고용한다. 이는 엄청난 숫자다. 제품이 모두 프랑스에서 제조되는 걸 감안하면 엄청난 인원이다. 이걸 보면 우리가 공방에 얼마나 투자하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훌륭한 장인과 훌륭한 가죽은 한계가 있다.
현재 몇 가지 제품은 고객의 열의가 우리의 생산력을 능가하긴 한다. 우리는 신중하게 물건을 만들기를 좋아한다. 시간이야말로 우리가 자신 있는 분야다. 시간을 갖고 차차 성장한다는 생각, 즉각적인 대응이나 요구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에르메스의 DNA이고, 고객들도 이를 알아준다. 어떤 제품을 원하지만 구할 수 없다는 사실, 이는 그 제품이 최고의 질을 보장한다면 고객이 이해해주는 점이다.
사실 기다려야 하는 제품은 우리 컬렉션 중 가방 5, 6가지 모델 그리고 소형 가죽 액세서리 등이다. 나머지는 풍부하다. 매장에 가면 수천 가지의 제품을 볼 수 있다.”
―에르메스의 유통 및 세일즈를 총괄하는 부회장으로서 당면 과제는….
“180년의 역사가 계속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에르메스가 최고의 질을 자랑하는 입지를 굳건히 이어가도록 하는 게 최우선 목표다. 그런데 이는 즉각적인 대응에 대한 압력과 상충될 때가 있다. 영업 책임자로서 매일매일 시장의 개발, 판매의 증대, 고객 관리 등 즉각적인 대응을 필요로 하는 일이 생긴다. ‘즉각성’은 장기 비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금 나의 당면 과제는 즉각 대응의 유혹을 잘 버티고 멀리 본다는 것을 염두에 두며 계속해서 우리의 길을 닦는 것이다.
또 하나는 스마트폰! 스마트폰은 소비의 방식, 직원들과의 소통 등 모든 것을 바꿔놓고 있다. 나는 이를 낙관적으로 본다. 에르메스는 프랑스에서 많은 일이 일어나는데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에 보여줄 수 있게 됐다.”
―에르메스의 디지털 전략은….
“아마도 우리가 온라인으로 판매한 최초의 (럭셔리) 브랜드가 아닌가 한다. 미국에서 ‘에르메스닷컴(hermes.com)을 2001년에, 프랑스에서는 2004년부터, 그리고 유럽 전체에서는 2007년에 열고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다. 아직 중국과 한국이 남았다. 언제가 될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몇 년 안에 곧 중국과 한국에서도 온라인 판매가 가능해질 것이다.
온라인 판매가 활성화 되는 것은 (오프라인) 매장의 종말이 아닌 시작이 될 것으로 본다. 판매직원은 단순한 판매를 넘어 원래 훌륭한 직업이었던 ‘세일즈맨’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고객에게 조언을 주고 고객과 함께하는 역할 말이다. 온라인에 모든 제품이 있어도 고객은 경험하고 대화하기 위해 매장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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