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장단역 증기기관차와 뽕나무 한 그루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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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때 폭격으로 멈춰 선 ‘장단역 증기기관차 화통’. 경기 파주시 임진각에 전시 중이다.
6·25전쟁 때 폭격으로 멈춰 선 ‘장단역 증기기관차 화통’. 경기 파주시 임진각에 전시 중이다.
1950년 12월 31일 오후 10시경, 경기 파주 장단역. 개성 방향에서 북한의 화물 증기기관차가 천천히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그 순간, 기관차 위로 포탄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당시 기관사는 한준기였다. 국군의 군수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개성에서 평양으로 가던 한준기는 중국군에 길이 막히자 황해도 평산군 한포역에서 북한 기관차로 갈아타고 장단역으로 들어오던 중이었다. 북한 기관차가 들어서자 우리 국군이 북한군으로 오해해 폭격을 가한 것이다. 한준기가 평양에 도착하지 못하고 중간에 돌아온 것은 이듬해 닥쳐올 1·4 후퇴의 불길한 전조였다.

폭격으로 인해 기관차는 탈선한 채 그대로 멈췄다. 표면은 온통 총탄 자국이었고 바퀴와 철로는 부서지고 휘어졌다. 시간도 함께 멈췄다. 파주 장단역은 휴전 후 비무장지대(DMZ)가 되었고 사람들의 발길은 끊어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증기기관차 화통은 점점 검붉게 녹슬어 갔다. 길이 15m, 높이 4m, 무게 70t. 이 녹슨 쇳덩이는 이후 분단의 상징물이 되었다. 기관차에 자라던 한 그루 뽕나무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그건 강인한 생명력으로 여겨지기도 했고 더러는 처연함으로 비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이 기관차 화통을 DMZ에 방치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대두됐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은 보존 처리하기로 결정했고 2006년 11월 임진각으로 옮겨 보존 처리에 들어갔다. 가장 힘든 작업은 녹 제거였다. 녹 제거는 미세한 톱밥가루 등을 물 뿌리듯 분사해 녹을 떼어 내는 식으로 진행됐다. 분사의 힘이 너무 약하면 녹이 떨어지지 않고 지나치게 강하면 기관차 표면이 손상될 우려가 크다. 따라서 적절하게 분사 강도를 조절하는 것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했다. 녹을 제거하고도 녹이 슨 것처럼 색깔과 모습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했다. 세월의 흔적을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2009년 보존 처리를 마친 증기기관차 화통은 DMZ로 돌아가지 않고 임진각에 남았다. 역사적 교훈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전시 위치는 자유의 다리 바로 옆. DMZ의 녹슨 기관차 위에서 분단의 아픔을 지켜봤던 뽕나무도 근처에 옮겨 심었다. 장단역에 버려져 있던 침목과 레일을 활용해 철길도 조성했다. 철길의 침목엔 평양을 거쳐 신의주까지 경의선의 여러 역 이름을 적어 놓았다. 그 옆엔 또 이렇게 적혀 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DMZ 넘어 저곳으로!’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
#6·25전쟁#장단역 증기기관차 화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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