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다녀온 국립중앙박물관의 ‘프랑스 근현대 복식, 단추로 풀다’ 특별전은 전시 대상과 기법이란 측면에서 참신한 시도가 돋보였다. 전시를 보기 전 품었던 “단추는 옷의 부속품에 불과하다”는 편견은 여지없이 깨졌다. 각양각색의 단추를 통해 프랑스 근현대사를 조망하겠다는 박물관의 기획 취지는 충분히 전달됐다.
박물관은 프랑스 장식예술박물관과 손잡고 18∼20세기 프랑스 단추와 옷, 그림, 책, 사진 등 약 1800건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 기념 전시로 준비됐지만, 프랑스 측과의 견해차로 우여곡절 끝에 올해 열리게 됐다.
아마 이번 특별전에서 전시팀이 맞닥뜨린 최대 난관은 시각화였을 것이다. 그림이나 조각과 달리 크기가 5cm도 안 되는 단추를 관람객에게 제대로 보여주기란 쉽지 않다. 이런 점에서 전시장 입구 ‘프롤로그’에 18세기 이후 프랑스 단추들을 진열한 유리장과 특수 돋보기를 설치한 건 매우 적합한 선택이었다. 살짝 누르면 빛이 들어오는 돋보기를 진열장 위에 들이대자, 정교하게 다듬어진 단추들의 속살이 훤히 비쳤다.
이 중 18세기 말∼19세기 초에 강철로 만든 단추는 자개나 보석류로 만든 화려한 단추들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단추 안팎을 정교한 방울모양으로 장식한 게 신라 금관의 누금(鏤金·미세한 금 알갱이를 하나씩 붙이는 장식 기술)을 연상시켰다. 만약 육안으로만 관찰했다면 놓쳤을 디테일이다.
13세기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유럽에 들어온 단추는 신분을 상징하는 대표 수단이었다. 왕이나 귀족들은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려고 금과 루비,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단추를 앞다퉈 사용했다. 16∼17세기 프랑스 국왕들이 단추에 사치스러운 보석 사용을 금지하는 명령을 수차례 내릴 정도였다. 분홍색과 녹색, 파란색 인조 다이아몬드(스트라스)와 금, 은, 크리스털로 치장된 단추는 보석 목걸이를 빼닮았다.
프랑스 혁명을 기점으로 한 18세기 후반 유럽 자유주의 사상은 단추에도 깃들었다. 무릎을 꿇은 노예 그림과 함께 ‘나는 사람이 아니고 형제가 아닙니까?’라는 문구가 적힌 18세기 후반 단추가 눈길을 끈다. 이 문구는 1785년 창설된 ‘노예무역 철폐를 위한 협회’가 즐겨 사용했다. 프랑스 혁명 당시 격언을 새겨 놓은 단추도 있다.
유럽 역사에서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은 영국의 산업혁명 파고가 대륙을 휩쓴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 영국에서 도입돼 프랑스에서 유행한 강철 단추는 산업혁명의 강렬한 흔적을 보여준다. 당시 강철 생산량은 산업혁명의 발전 정도를 보여주는 중요한 척도였다.
입체감 없이 평면의 기하학 무늬로 전면을 가득 채운 이른바 ‘아르누보’(화려한 색감과 섬세한 장식을 특징으로 한 새로운 미술양식) 단추도 눈여겨볼 만하다. 백승미 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일본 우키요에(목판화) 영향을 받은 19세기 말 프랑스 아르누보 양식이 단추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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