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이라크전쟁 당시 바스라의 중앙도서관에 이라크군 작전본부가 들어섰다. 주요 폭격 지점이 될 것이 분명했다. 도서관장 알리아 무함마드 베이커는 장서를 자신의 집으로 빼내기 시작했다. 극도의 혼란에 빠진 바스라에서는 약탈이 횡행했다. 알리아는 사람들을 모아 밤을 새워 친구의 레스토랑으로 책을 옮겼다. 다음 날 도서관은 불타 버렸다. 알리아와 친구들이 구해낸 책은 3만 권에 달했고 희귀본도 많았다.
1941년 12월 7일, 미군 화물선 SS 프레지던트 해리슨호가 양쯔강 하구에서 일본군 순시선의 공격을 받았다. 서지학자 첸춘쉰(錢存訓)은 발을 동동 굴렀다. 두 달 전부터 그는 미 의회도서관에 도서를 매각하는 형식을 취하여 고서 3만여 점을 나누어 선적해 보냈다. 화물선에는 12월 5일 마지막 선적한 상자들이 실려 있었다. 6개월 뒤 첸춘쉰은 고서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1965년 미 정부는 고서를 대만으로 보냈다. 첸춘쉰은 1984년 대만 고궁박물원에서 고서를 확인하고 눈물을 흘렸다.
‘한국 도서관의 아버지’로 불리는 박봉석은 광복 직후 우리나라 도서관 직원들을 모아 일본이 총독부 도서관 장서를 가져가지 못하도록 지키고 시내 각 도서관 장서도 지켜냈다. 문헌수집대를 조직하여 포스터와 전단을 비롯한 다양한 인쇄물을 모았고 국립도서관 부관장에 취임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자료를 지키기 위해 도서관에 머물다 납북되었다.
1950년 12월 10일 저녁,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 ‘일성록’ 등 규장각 서고의 고서들이 미군 트럭에 실려 서울역 근처로 옮겨졌다. 일부는 북한군이 북으로 가져가기 위해 새끼줄로 묶어 놓은 상태였다. 국립박물관과 국립도서관 주요 장서와 함께 화물열차에 실린 고서들은 일주일 걸려 부산에 도착했다. 이송을 책임진 규장각 부사서 백린(전 하버드대 옌칭도서관 사서)은 부산에서 반년 넘도록 ‘승정원일기’가 담긴 궤짝 위에서 잠을 잤다.
부산 금정산 기슭에 부산기록관이 있다. 개관 직후인 1985년 실록 태백산사고본을 이전받은 뒤 보존 가치가 높은 국가적 기록물을 보존해 왔다. 부산기록관 주변 숲이 2020년까지 기록문화와 실록의 의미를 되새기는 ‘실록의 숲’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6·25전쟁 당시 부산은 사람뿐 아니라 책들의 피란지이기도 했다. 전쟁의 참화에서 책을 구해내 우리 문화를 보전한 이들을 떠올려 보게 되는 6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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