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오신 세계 각국 11명의 피아니스트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습니다. ‘한 사람만 피아니스트 아님’이라는 설명도 곁들였습니다. 지인들은 바로 댓글을 달았습니다. “척 보고도 알겠어요. 귀하만 손이 작은데요.” 제가 올린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니 역시 손 크기가 눈에 띄게 차이가 났습니다.
역사상 큰 손으로 기억되는 피아니스트로는 누가 있을까요? 영국 ‘클래식 FM’ 인터넷 사이트가 정리한 것을 보니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와 리스트 프란츠(1811∼1886)가 한 손으로 13도 음정을 짚었다는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13도라면 오른손으로 엄지손가락이 ‘도’ 음을 짚을 때 새끼손가락은 다음 옥타브의 ‘라’를 짚을 수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한국 사람은 일반적으로 ‘도’에서 다음 ‘도’까지 짚을 수 있을 정도이니 그것보다 5개 건반을 더 짚을 수 있는 큰 손을 가졌다는 얘기죠. 현역 피아니스트 중에서는 중국의 랑랑이 12도, 즉 도에서 다음 옥타브의 솔까지 짚을 수 있다고 클래식 FM 사이트는 전했습니다.
그런데 손이 무척 컸던 라흐마니노프와 리스트는 작곡가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피아노곡에서는 큰 손으로 소화할 수 있는 온갖 어려운 기교를 악보에 써넣었죠. 이 악보를 따라 쳐야 하는 후배 음악가들의 애환은 그다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미국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선우예권 씨는 결선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3번을 협연했습니다. 영화 ‘샤인’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피아노협주곡’으로 알려진 작품이기도 하죠. 길이도 다른 협주곡들의 30분 남짓을 훨씬 뛰어넘는 50분에 달하는 데다 특히 3악장에서는 피아노로 표현할 수 있는 온갖 어려운 테크닉이 펼쳐집니다.
어려운 만큼 기교의 완성도를 과시할 수 있어 서울국제음악콩쿠르를 비롯한 여러 국제콩쿠르 결선 진출자들이 선택하는 작품이지만, ‘삐끗’ 하는 순간 컨트롤을 잃기도 쉬운 작품입니다. 최고난도의 도전으로 최고의 성적을 거둔 선우예권 씨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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