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이 뜨겁다. ‘평뽕’이란 표현도 있다. 평양냉면 중독자, 마니아라는 속어다. ‘냉면 성애자’라고도 한다. 가위 평양냉면의 뜨거운 열기다. “평양냉면은 세 번을 먹어봐야 그 맛을 안다”고 한다. 세 번을 먹으면 그 맛을 알고 중독된다는 뜻이다. 평양냉면의 ‘슴슴한 맛’이라는 표현도 유행이다. 대략 심심한 맛으로 짐작한다. 어떤 맛이 심심한 맛일까.
대부분의 평양냉면 전문점은 고기 육수를 사용한다. 소, 돼지, 꿩, 닭 등이다. 닭발로 육수를 내기도 하고 더러 동치미 국물을 섞기도 한다. 여러 고기 국물을 섞어 쓰는 경우도 있다. 어떤 고기든 고기 국물 맛은 구수하다. 심심한 고기 국물 맛? 어쩐지 어색하다. 심심한 맛은 채소 국물 맛이다.
인공조미료 아지노모토의 세례를 가장 먼저 받은 것도 냉면이다. “조미료를 더한 냉면은 한 번에 다섯 그릇을 먹는다”는 1930년대 신문광고 문구도 남아 있다. 대부분의 냉면 전문점은 많거나 적게 조미료를 쓴다. 아지노모토는 1920, 30년대부터 한반도 전역을 휩쓴다. 그 선두에 평양 일대 냉면집들의 모임인 ‘면미회(麵味會)’가 있었다. 조미료는 인건비를 줄이는 방법이기도 했다. 냉면집은 조미료 확산의 주인공이다.
여러 종류의 고기 국물에 조미료까지 더하면서 심심한 맛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색하다. 소금도 문제다. 냉면 국물을 다 마시면 염화나트륨 섭취도 만만치 않다. 고기 육수, 조미료, 소금. 냉면은 결코 심심한 맛이 아니다.
냉면의 심심한 맛은 동치미, 백김치라야 가능하다. 다산 정약용의 시에 백김치가 등장한다. 다산은 벼슬살이 중 황해도 해주에 과거시험 감독관으로 간 적이 있다. 이때 서흥도호부에서 냉면을 먹는다. 시기는 음력 10월이다. 추운 계절이다. 육수(?)는 배추 백김치 국물이다. “냉면 가락이 가지런하고 배추김치는 푸르다(숭菹碧·숭저벽)”고 했다. 조미료는 없었다. 고기 국물 이야기도 없다. 심심한 국물이다.
‘냉면의 계절은 겨울’이라는 표현도 어폐가 있다. 냉면은 차가운 국수다. 음식을 차갑게 만드는 것은 얼음이다. 얼음은 귀했다. 겨울냉면이 각별히 맛있어서 선택한 것이 아니다. 무더운 여름, 얼음 구하기가 어려우니 차가운 국수는 어렵다. 겨울냉면은 울며 겨자 먹기다.
얼음이 비교적 흔해지면서 여름냉면은 나타난다. 하재 지규식은 공인(貢人) 출신으로 분원(分院)을 운영한 자영업자다. 지규식은 ‘하재일기’(1891∼1910년 기록)에서 지금의 서울 종로통에서 여러 차례 냉면을 사먹었다고 했다. 냉면은 여름철 음식이 되었다. 얼음만 구할 수 있다면 냉면은 여름 음식이다. 이제 냉장고도 흔해졌다. 굳이 한겨울에 냉면을 먹어야 ‘냉면 맛을 아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은 난센스다. 겨울냉면은 연세 든 실향민들의 ‘소울 푸드’다.
조선 후기 문신 이인행은 1802년 평안도 위원으로 유배를 떠난다. 유배생활을 기록한 ‘서천록(西遷錄)’에 냉면이 등장한다. “6월 초이틀. 냉면을 즐기는 것이 이 지방(위원)의 풍습이다. 교맥(메밀)으로 국수를 만든 후, 김치(沈저·침저) 국물로 (맛을) 조절한다. 눈, 얼음이 흩날리는 깊은 겨울에 쭉 마시면 시원하다.” 더운 계절인 음력 6월의 일기에서 “한겨울 냉면 국물이 시원하다”고 적은 것이 이채롭다.
“원형 평양냉면은 메밀에 감자전분을 섞은 것”이라는 주장은 의미가 없다. 전분이 고구마, 옥수수 등으로 바뀌었다는 기록도 마찬가지. 전분 함량으로 원형, 전통, 정통을 따질 일은 아니다. 일본 니하치(二八)면을 예로 들면서 메밀 대 전분(혹은 밀가루) 비율 8 대 2의 면이 맛있다는 주장은 우습다. 제분기술과 면 뽑는 기계가 발달하지 않았을 때 이야기다. 일본에도 주와리(十割) 건면(乾면)이 있다. 가위로 국수를 자르지 않고, 입술로 툭툭 끊어지는 부드러운 면발은 막 뽑아낸 메밀 100% 생면이다.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한다. 100% 메밀국수도 그리 어렵지 않다. 예전 방식의 전분이나 밀가루 섞은 면을 전통이라고 고집하는 것은 우습다. 입술로 툭툭 끊어지는 면을 먹고 ‘쫄깃한 면발’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더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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