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크리스마스 날 일본 최대 광고회사 덴쓰의 신입사원 다카하시 마쓰리(高橋まつり)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도쿄대를 졸업한 재원으로 4월 회사에 입사했지만 한 달 200시간 이상의 시간외근무, 53시간 연속 근무 등 살인적 업무에 지쳐 우울증에 걸린 것이다.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하다’, ‘자고 싶다는 것 말고는 감정을 잃었다’ 등 그가 생전 트위터에 남긴 글은 많은 일본인을 울렸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다시는 이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며 과로사 방지 대책 수립을 약속했다.
당시 적잖은 이들이 ‘그렇게 힘들면 회사를 그만두지 왜 목숨을 끊었느냐’며 안타까워했다. 일러스트레이터 시오마치 코나(汐街コナ) 씨가 4월에 낸 <‘죽을 정도라면 회사를 그만두지’가 안 되는 이유>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과로사하는 이들의 심리 상태와 위기 탈출 방법을 다룬 만화책이다.
첫 직장으로 디자인 회사에 취직했던 저자는 매달 100시간씩 야근을 하며 매일 밤 마지막 열차를 타기 위해 전력질주하는 생활을 한다. 그러다 어느 날 지하철역에서 문득 자살을 떠올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마침 우연히 만난 소꿉친구로부터 ‘그딴 회사 그만두면 되잖아’라는 말을 듣고 회사를 옮기기로 마음먹는다.
저자는 과도한 업무가 사고력을 빼앗고 시야를 좁힌다고 지적한다. 건강할 때는 이직, 퇴직, 휴직 등 다양한 방법을 떠올릴 수 있지만 과로할 때는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선택지가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소중한 사람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고장 난 것처럼 계속 걸을 수밖에 없게 된다.”
저자는 무조건 참고 노력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고 조언한다. 주변과 비교할 필요도 없다. 200시간, 300시간 시간외근무를 하는 동료가 주변에 있다고 자신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좋아하는 일이고 스스로 택한 일이라며 무한노동을 정당화할 필요도 없다.
책에는 감수를 맡은 전문의의 충고도 들어 있다. 갑자기 눈물이 나거나, 식욕부진·불면에 시달리거나,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잦아진다면 즉시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으라는 것이다. 뼈가 부러진 사람에게 “힘을 내 끝까지 달려”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과로로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에게도 무작정 ‘힘을 내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퇴직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면 일단 쉬는 것도 방법이다.
저자는 지난해 다카하시 씨의 자살 이후 자신의 트위터에 만화를 올렸는데, 이를 30만 명이 리트윗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단행본도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가 돼 두 달 만에 벌써 10만 부 넘게 찍었다.
2015년 일본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과로사·과로자살 건수는 482건이다. 매일 1명 이상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연간 근무시간은 2015년 기준으로 일본보다 400시간가량 많다.
얼마 전 한국의 케이블방송사에서 조연출로 일하던 젊은 PD가 “하루에 20시간 넘게 일을 시키고 2∼3시간 재운 뒤 다시 불러내는 삶은 가장 경멸하던 것”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을 다른 나라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혹시 지금 과로에 지쳐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저자의 말을 꼭 전해주고 싶다. “세상은 충분히 넓다. 그리고 자신은 스스로 지킬 수밖에 없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