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寒流’ 데운 ‘뮤지컬 韓流’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6일 03시 00분


창작 뮤지컬 ‘빨래’ 베이징 공연… 中서 로열티 수입, 中 배우들이 연기
서울 뒷골목 한글 간판 그대로 재현… 관객들 “사회적 약자의 분투기 감동”

중국 배우들이 23일 저녁 중국 베이징의 한 공연장에서 한국 뮤지컬 ‘빨래’를 공연하고 있다. 한중 간 민간교류가 계속돼야 한다는 점을 증명한 공연이었다. 왕하이샤오 프로듀서 제공
중국 배우들이 23일 저녁 중국 베이징의 한 공연장에서 한국 뮤지컬 ‘빨래’를 공연하고 있다. 한중 간 민간교류가 계속돼야 한다는 점을 증명한 공연이었다. 왕하이샤오 프로듀서 제공
“있는 힘을 다해 살아나가는 서울 사람들의 정신이 내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서울에 대해 아주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됐습니다.”

얄궂은 폭우가 쏟아지던 23일 저녁. 한국의 명동거리와 비슷한 베이징(北京) 더플레이스(스마오톈제·世貿天階)에서 뮤지컬 ‘빨래’를 보고 나온 중국인 관객 한쯔펑(韓梓峰·30) 씨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 때문에 공연 보러 오기가 꺼려지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전혀 아니다. 이 공연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빨래’는 가난한 서점 여직원, 몽골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 등 다세대주택 지붕 밑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들이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을 그렸다. 한국에서 4000회 이상 공연되며 대표적 창작 뮤지컬로 자리 잡았다. 한국 뮤지컬의 로열티를 중국 측이 수입해 중국 배우들의 연기로 무대에 올린 라이선스 공연 방식은 이번이 처음이다.

무대 배경과 소품은 물론이고 줄거리까지 중국판으로 각색하지 않은 한국 색채 그대로였다. 한국에선 흔하지만 중국에선 금지된 간판인 ‘십일조교회’를 비롯해 제주똥돼지 국제수퍼가 무대를 장식했다.

관객 웨추스(岳秋實·28·여) 씨는 “입던 옷에 담긴 고통을 빨래로 씻어내고 새롭게 대도시 생활을 이어가는 모습이 매우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주후이후이(祝卉卉·34·여) 씨는 “정말 멋지다. 서울 여행에서는 못 본 진짜 서울 이야기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주 씨는 “사드 때문에 한국적인 작품을 보기 싫지 않았느냐”고 묻자 “문화와 정치는 관계가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공연 연출을 맡은 한국어 원작 감독 추민주 씨는 “사드 문제로 한중 간에 어려움이 많지만 정작 중국 배우들은 한국 과자가 편의점에 나왔다 하면 우르르 몰려가 사는 친구들”이라고 말했다.

중국인 프로듀서 왕하이샤오(王海笑) 씨는 “베이징의 공연 제작사와 프로듀서, 티켓 대행사 대표 등 공연계 주요 인사가 대거 관람했다”며 “최근 뮤지컬 시장의 성장으로 해외 뮤지컬에 눈을 돌리고 있는 중국은 한국의 공연 제작 노하우가 필요하고 한국은 중국의 공연 시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드 문제와 상관없이) 한중 간 경제 문화 민간 교류는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이징의 외교소식통은 “국적이 모호한 케이팝 한류보다 한국 정서와 색채로 공감할 수 있는 문화산업 교류가 블루오션”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 서점 직원인 남녀 주인공이 처음 만났을 때와 사랑을 고백할 때 ‘우리도 더 가까워지자(我們也近一点파)’라는 대사가 있습니다. 바로 제가 중국 관객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지요.”(추 감독)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뮤지컬 빨래#베이징 뮤지컬 빨래#뮤지컬 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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