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서 계속) 국내 음원 차트와 비교하기 위해 해외 차트를 파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에이전트 7(임희윤)의 고민은 어떤 해외 차트를 택하느냐부터였다. 디지털 음원의 다운로드와 스트리밍 횟수에 서로 다른 가중치를 두는 멜론 차트와 꼭 맞는 해외 차트를 찾기가 힘들었다. 대중적 인기가 가장 큰 노래를 매주 종합한다는 점에서 빌보드 핫100(싱글차트)를 택해 분석해 보기로 했다.
빌보드의 10년 역시 음악 소비 형태의 격변기였다. 2007년 아이폰이 등장했고 다운로드 플랫폼인 아이튠스, 스트리밍 서비스인 스포티파이와 애플뮤직이 차례로 오픈했다. 이에 따라 빌보드 역시 디지털 음원 소비량을 음반 판매, 방송 횟수와 함께 순위 산정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 솔로 가수 절대 우세+한 번 오르면 오래간다
국내 멜론 차트를 분석한 전편들처럼 10년간(2007년 6월∼올해 5월) 빌보드 싱글차트 1위 곡을 모아 파헤쳤더니 흐름이 보였다.
빌보드에선 그룹보다 솔로 가수가 절대 우위에 있었다. 장기 집권 경향은 뜻밖에 멜론보다 훨씬 강했다. 빌보드에서 10년간 도합 10주 이상 1위를 지킨 가수는 무려 21팀. 같은 기간 멜론(9팀)보다 훨씬 많다. 21팀 가운데 17팀이 솔로. 아이돌그룹은 없다. 힙합 듀오(매클모어앤드라이언루이스),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듀오(체인스모커스), 혼성 4인조(블랙아이드피스) 정도가 비(非)솔로. 장르로는 댄스 팝 또는 팝 성향 힙합의 두 가지가 절대다수다. 록 밴드 중 10주 이상 1위 팀은 마룬5뿐. 서울 잠실주경기장을 가득 메웠던 콜드플레이도 2008년 6월 28일자에 딱 한 주 ‘Viva La Vida’를 정상에 올려놨을 뿐이다. ‘록은 죽었는가?’ 아재의 한탄을 뿜을 때가 아니다. 분석을 이어가자.
멜론에서는 10년간 한 차례도 없었던 두 달 반 이상, 즉 10주 이상 연속 1위 곡도 빌보드에선 아홉 번이나 나왔다. 2007∼2012년 10주 이상 연속 1위 곡은 3곡에 불과했지만 2013년 이후 6곡으로 늘며 이런 경향은 더해졌다.
싱어송라이터와 솔로 가수의 선전이 도드라지지만 눈에 보이는 게 다는 아니다. 제작사가 될성부른 연습생을 뽑아 춤과 노래를 훈련시켜 스타로 키우는 한국의 방식과는 좀 다르지만 유니버설 소니 등 거대 회사의 입김이 세다는 면에서는 맥이 통한다.
유니버설뮤직코리아의 임향민 이사는 “미국 대중음악사에서는 뉴키즈온더블록, 백스트리트보이스가 인기를 끈 1990년대를 빼면 아이돌그룹 시대가 거의 없었다”면서 “싱어송라이터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빌보드 차트에서 엿보이는 건 스타성 있는 아티스트(artist)와 곡(repertoire)을 매치시키는 시스템의 힘이었다. 다수의 1위 곡에 맥스 마틴, 닥터 루크, 퍼렐 윌리엄스, 마크 론슨 등 소수 히트 프로듀서들이 공동 작곡·편곡자로 붙어 있다. 스타성에 작사·작곡 능력까지 갖춘 스타를 발굴해 그 능력을 홍보하되 ‘제품화’ 공정에선 히트 프로듀서를 활용한 강력한 ‘대중성 게이트키핑’이 들어가는 셈이다.
○ 전방위 홍보… 순회공연과 앨범의 전통적 힘
빌보드 장기 집권 가수 중엔 한 앨범에서 여러 곡을 정상에 올린 이가 많다. 멜론 인기 가수가 특정 시점에 앨범 타이틀곡이나 디지털 싱글만 한 곡만 1위에 올린 것과 다른 양상이다. 이진섭 팝 칼럼니스트는 “빌보드에서는 앨범 단위의 힘이 여전하다”면서 “앨범 제작 단계부터 장기 전략을 갖고 수록 곡 여러 개를 잇달아 히트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음반 발매에 맞춰 TV·라디오 라이브 프로 출연, 순회공연, 소셜미디어를 아우르는 다각도의 홍보 전략이 가동된다. 오프라인에서도 대중과 접점을 길게 끌고 가는 특징이 보인다.”
종합해 보자. 멜론과 빌보드는 회전 속도에서는 차이를 보였지만 셀러브리티형 가수 중심의 기획 콘텐츠가 대자본의 힘을 업고 승승장구했다는 면에서는 닮은 면모를 보였다.
7은 드디어 삽을 내려놓고 땀을 닦았다. 등에 땀이 흥건했다. “더울 땐, 쿨 노래지.” 제 딴엔 쿨하다고 생각하며 그는 잠재된 아재 본능을 분출했다. ‘해변의 여인’을 재생하는 순간 먹구름이 몰려와 하늘을 뒤덮었다. 바야흐로 여름이었다.(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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