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의 궁시렁궁시렁]콩쿠르 우승 특전으로 1만 달러 쇼핑 즐긴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8일 20시 34분


10일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28)이 2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이날 간담회에 앞서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연주했던 2곡을 연주했습니다. 세미파이널 연주곡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듀엣 주제의 사랑을 말하다’와 예선전 연주곡인 슈베르트-리스트의 가곡 ‘라타나이’는 8월에 발매 예정인 콩쿠르 우승 실황음반에서 각각 2번째와 6번째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이날 간담회에서 나온 이야기를 일문일답으로 소개합니다.

Q. 이번 콩쿠르가 유독 힘들었다는데….

A. 꽤 많은 콩쿠르를 나갔는데 모든 것을 통틀어서 가장 많은 프로그램을 준비했어요. 총 6번을 연주했어요. 한 곡이 45분 정도여서 시간으로 따지면 4시간이 넘는 프로그램이죠. 짧은 기간에 콩쿠르가 이뤄지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힘들었어요.

Q. 개인적으로 많은 의미가 있는 콩쿠르인 것 같아요.

A.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제 나이도 이제 콩쿠르 참가에 제한이 걸리는 거의 마지막 시기죠. 음악 인생에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어요. 감사하게도 좋은 상을 많이 받았었지만 나태함 때문에, 예를 들어 콩쿠르 일주일전 프로그램 곡을 바꾸는 등 개인적으로 소홀하게 준비했던 때도 있었어요. 이번 콩쿠르 때는 특별히 후회 없이 준비를 해서 나가고 싶었어요. 준비도 많이 했어요.

Q. 대회 직전까지 다른 연주회도 많았는데….


A. 항상 콩쿠르 준비는 연주회를 준비할 때처럼 해요. 조금 다른 점은 치밀하게 준비한다는 것이죠. 모든 음악적 표현에서 조금 더 느슨해지거나 소홀해지면 안되니 그런 점에 중점을 뒀어요. 연주 일정이 있다고 콩쿠르에 크게 지장이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연주에만 집중하려고 했어요. 예전과 다르게 부지런히 준비를 했기 때문에 콩쿠르에 대한 자신감은 있었어요.

Q. 콩쿠르 나가기 전까지 고등학교 3학년처럼 살아야 한다고 하잖아요.

A. 준비 과정은 힘들었죠. 콩쿠르를 준비하는 동안은 지인들과 연락을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어머니와도 문자메시지를 많이 하지 않았어요. 이런 과정을 몇 번 거치다 보니 이해를 해주시죠. 저도 스트레스 받을 때 가까운 친구들에게는 힘든 상황을 얘기해요. 잘 받아줘서 고맙죠. 콩쿠르를 준비하고 참가한다는 건 정신적 스트레스가 굉장히 많은 일이에요. 다른 것들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음악 자체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어요.

Q. 많은 콩쿠르에 참가했는데 이번 콩쿠르도 긴장됐나요?

A. 긴장감은 점점 커져요. 부담감도 커지죠. 이번 콩쿠르 세미파이널 결과 발표 때 너무 긴장한 나머지 제 이름을 듣고 일어나면서 휘청거렸어요. 머리를 의자에 부딪쳤죠.

Q. 이번 콩쿠르처럼 큰 대회에서는 흠을 잡히지 않으려고 노력하나요?

A. 콩쿠르 연주와 연주회에서의 연주에 많은 차이를 두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올해 4월 독일의 한 콩쿠르에서 심사위원을 맡았는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경험을 통해 많이 깨달았어요. 심사위원이라는 자리가 주관적일 수밖에 없어요. 참가자들이 아무리 결점 없는 연주를 하더라도, 무결점보다는 흡입력이 있는 연주에 끌리게 돼요. 저도 이번 콩쿠르 뒤 심사위원들에게 들었던 얘기 가운데 인상 깊었던 것이 “당신의 연주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설득력이 있었다”라는 말이었어요. 연주자에게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Q. 이번 콩쿠르에서 프로그램을 다른 참가자와 차별화를 했나요?

A. 평소 리사이틀 프로그램을 준비할 때와 같아요. 조금 더 다양한 맛을 들려주고 싶었고 제 장점을 표출할 수 있는 곡들을 선택했어요. 오늘 기자간담회에서 들려준 두 곡도 짧은 곡이지만 프로그램 상 자연스럽게 흘러가는데 도움이 됐어요. 제가 앙코르 때 자주 연주하는 곡이기도 하죠. 다양성에 중점을 두었어요. 콩쿠르에서 많이 연주되는 곡들은 심사위원들이 피곤함을 느끼기 때문에 위험요소가 될 수도 있어요.

Q. 이번 콩쿠르 전과 후에 변한 것은 있나요?


A. 연주 외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조금 더 많아졌다는 점이죠. 우승 직후부터, 우승했다는 기쁨을 느끼기도 전에 미팅과 일정이 너무 많았어요. 4시간 동안 사진 촬영도 하고 다음날 미팅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했죠. 정신적으로 피곤하긴 했지만 제가 간절히 원했던 일이기 때문에 감사하게 생각해요.

Q. 앞으로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A. 올해 말까지 미국 등에서 연주회를 열고 11월에 한국에 돌아와 세종문화회관 40주년 기념공연 협연과 12월 20일 독주회를 가져요. 이미 독주회는 매진돼 추가 공연(12월 15일)을 준비 중이죠.

Q. 프로 연주자로 활동하다 콩쿠르에 도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제 인생에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어요. 그 동안 많은 콩쿠르에서 우승을 했지만 후회가 있었죠. 저의 나태함 때문에 일주일만 연습하고 콩쿠르 참가하기도 했어요. 30세가 넘으면 콩쿠르 참가도 하기 힘드니 이번 콩쿠르에서는 후회나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았어요.

Q. 이번 콩쿠르는 얼마나 착실하게 준비해갔나요?


A. 다른 콩쿠르와 비교했을 경우 5~6배 이상 준비했어요. 주변에서는 그렇게 일찍 준비해서 지치는 것 아니냐고 할 정도였죠. 저는 후회가 없는 연주를 하려면 더 많이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콩쿠르는 2주 반 정도 진행됐는데 제가 순서가 뒤쪽이라 이틀에 한번 꼴로 연주를 했어요. 결승전에서도 순서가 뒤쪽이었는데 앞으로 당겨져서 거의 체육인 수준으로 연주했죠.

Q. 앞으로 콩쿠르에 더 도전을 할 것인가요?

A. 하하.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다른 콩쿠르에 비해 연주자에게 전폭적인 지원도 해주고 연주 일정도 많아요. 유럽 쪽으로도 연주할 길이 열렸어요. 콩쿠르 도전은 이제 끝이에요. 후회는 없어요. 그만큼 준비와 노력을 했기 때문이죠.

Q. 지금까지 출전한 콩쿠르는 몇 번인가요? 이번 콩쿠르 특전은 무엇인지요?

A. 이번 콩쿠르 끝나고 주최 측에서 1만 달러를 지원해줘서 양복을 맞췄어요. 수선을 해야 해서 아직 받지 못했죠. 셔츠와 신발 위주로 쇼핑을 했어요. 2015년 조성진이 우승했던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는 후회가 많이 남아요. 4월에 오디션을 봐야 하는데 자만했어요. 다른 오디션과 겹쳤던 것도 영향이 있었지만 제 게으름 때문에 연습을 소홀히 했어요.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콩쿠르에 참여한다는 것이 말이 안됐죠. 큰 실수였어요. 국제 콩쿠르에 처음 출전한 것은 16세였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매년 2~4개의 크고 작은 국제 콩쿠르에 출전했죠. 당시에는 커리어를 쌓고 우승해서 특전을 얻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금전적으로 도움을 받고 싶었어요. 절실했거든요. 선택권이 없었죠.

Q. 앞으로 어떤 연주자가 되고 싶나요?

A. 우선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돼 고맙죠. 많은 분들이 연주회를 찾아주는 것 같아서 또 고맙고요. 연주자로서 이 보다 더한 행복은 없어요. 저는 진심이 담겨 있는, 가슴으로 와 닿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힘든 시간이었지만 음악을 하면서 치유와 위로를 받고 행복감을 느꼈어요. 조금이나마 그런 감정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전달하고 싶어요.

Q. 이번 콩쿠르에서 애착이 가는 곡이 있나요?


A. 1차 예선을 하기 며칠 전 부담이 많았어요. 슈베르트 곡을 연주했는데 연주하면서 약간 제 자신을 내려놓게 되더라고요. 그냥 음악에 맡기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곡이 마음에 남아요. 실내악 라운드에서 드보르작을 연주했는데 굉장히 재미있게 연주했어요. 악단과 호흡이 잘 맞았고 연주 뒤 이메일을 받기도 했어요. 혼자가 아니라 동료 음악가들과 함께 음악을 했기 때문에 행복하고 그 자체를 즐길 수 있었어요.

Q. 최근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한국인처럼 피아노 잘 치는 사람은 없다”고 얘기했는데….

A. 저도 동의해요. 결과 자체만 봐도 한국인들이 많은 콩쿠르에서 파이널까지 올라가요. 모든 콩쿠르에서 그래요. 일부에서는 한국인 연주자들이 콩쿠르에 집착한다고 하는데 외국인 연주자들을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죠. 이번 콩쿠르에서도 많은 해외 연주자들이 두 번째 이상 참가한 사람들이 많았어요. 모든 연주자가 똑같아요. 국적에 관계없이 음악에 대한 갈망은 같죠. 한국인 연주자들이 좋은 점은 교류를 많이 한다는 것이죠. 서로 다른 악기라도 공유를 해요. 그러면서 서로에게 음악적 영감도 주고요. 꼭 연주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술 한 잔을 하면서도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일이 많아요. 그런 덕분인지 최근 한국이 연주자들이 잘되는 것 같아요.

Q. 후배 연주자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A. 조언을 할 위치는 아닌 것 같지만 만약 한 마디 할 수 있다면 그 순간 자체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큰 그림을 그리고 보는 게 좋다고 말하고 싶어요. 천천히 여유를 갖는 것도 좋고요. 사람은 누구나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조급하게 생각해서 빨리 달려간다면 그대로 음악에 나타나요. 음악 그 순수함에 집중하면 좋을 것 같아요.
※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의 연주 동영상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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