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잔향]책값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일 03시 00분


7년 전 어느 아침. 남녀 한 쌍이 찾아왔다. 남자는 “내가 디자인한 건물에 대한 기사에 내 이름이 빠졌다”며 수정을 요구했다. 취재원이었던 건축가에게 전화해 어찌된 일인지 물었다. 긴 한숨소리가 들렸다.

“나 참…. 건물주예요. 본인이 요구한 사항을 설계에 반영했더니 건축월간지에도 자신이 설계에 참여한 것으로 써달라고 했더군요.”

대학 전공과 무관한 직업에 도전하면서 했던 생각을 그날 다시 씁쓸하게 되짚었다.

건축 공부는 즐거웠다. 하지만 졸업을 앞두고 오랫동안 진로를 고민했다. 유선형 디자인으로 인기가 많았던 휴대전화를 쓸 때였다. 그 제품은 디자이너 이름이 아닌 제조사 사주의 이름을 딴 별칭으로 흔히 불렸다. 그 까닭만은 당연히 아니었지만, 책상에서 전공서적을 치우며 몇 번 그 휴대전화 생각을 했다.

새로움을 짓고 만드는 일에 대한 가격 매김이 박한 건 글쓰기도 건축이나 디자인과 마찬가지다. 얼마 전 막을 내린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석한 한 출판사 관계자가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어떤 관람객도 책값 할인을 요구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게 어째서, 특별히 좋아할 일인지. 책값은 왜 당연히, 할인돼야 하는 것인지.

책 관련 기사에 자주 ‘책값이나 내리라’는 댓글이 달린다. 한국 출판시장 책값은 해외에 비해 어떨까. 한 출판사 대표는 “싼 편이다. 독자의 요구는 더 저렴한 문고본을 많이 내라는 뜻일 수 있지만, 정작 문고본을 함께 내면 표지 예쁜 양장본만 많이 팔리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자기 집 짓겠다는 사람을 가끔 만난다. 태반은 “비용이 고민”이라며 설계비 깎을 방도부터 묻는다. 책값을 내려야 한다면, 뭐가 빠져야 할까. 새로움을 짓고 만드는 일에 대한 가격표. 조금씩은 달라지길 희망한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책값#건축#서울국제도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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