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빠순이는 분명 대중문화를 키우는 젖줄이다. 열정뿐만 아니라 시간과 돈까지 갖다 바침으로써 대중문화가 돌아가게 만드는 원동력 역할을 한다.―빠순이는 무엇을 갈망하는가?(강준만 강지원·인물과사상사·2016년) 》
이 책은 ‘빠순이’였던 딸과, 그 딸을 가까이에서 바라본 아버지가 함께 썼다. 딸 강지원 씨는 동방신기 팬클럽에 가입해 그들이 출연하는 음악방송을 모두 따라다녔고, 동방신기의 얼굴이 들어간 ‘굿즈(상품)’들을 수집했다. 아버지인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딸과 함께 빠순이를 바라보는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음지에 숨어 있는 빠순이들이 양지로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빠순이는 ‘오빠 순이’의 줄임말이다. ‘오빠에게 빠진 어린 여자 아이’를 의미한다. 1980년대에 소녀 팬들을 몰고 다녔던 가수 조용필의 ‘오빠부대’의 최신 버전인 셈이다.
빠순이에는 단순히 연예인을 좋아하는 ‘팬’의 개념과 달리 어리고 철없는 여성이라는 이미지가 들어가 있다. 실력과 상관없이 연예인의 얼굴에만 빠져(이들을 ‘얼빠’라고 지칭한다) 사생활을 캐내고 돈을 갖다 바치는 한심한 이미지로 낙인찍혀 있다는 것이다. 빠순이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사회의 시선 때문에 자신이 팬임을 숨기고 일반인인 척을 한다는 뜻으로 ‘일반인 코스프레’라는 용어까지 생겨났다.
저자는 빠순이를 10대 여학생들이 거쳐 가는 일탈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이 역시 다양한 취향 중 하나로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빠순이를 조롱하는 것은 취향에도 급을 나누고, 자신의 기준에서 급이 낮다고 생각되는 취향을 비웃음거리로 만드는 셈이라고 저자는 비판한다. 학문에 대한 열정과 집착은 고상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보면서 연예인에 대한 그것은 저급한 것으로 보는 이중잣대라는 것이다.
얼마 전 엠넷에서 방영한 ‘프로듀스 101 시즌2’는 40대 이상 연령층의 높은 참여율로 관심을 모았다. 시청자 투표로 101명의 남자 연습생 중 11명을 뽑아 아이돌 그룹을 만드는 방식이었는데 전체 투표에서 40, 50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10%를 넘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응원하고 이들을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활동이 장년층에서도 나타나는 문화적 현상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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