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백선희]지식이 대답이라면 무지는 질문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3일 03시 00분


이그노런스 스튜어트 파이어스타인·장호연 번역·뮤진트리·2017년
이그노런스 스튜어트 파이어스타인·장호연 번역·뮤진트리·2017년
백선희 번역가
백선희 번역가
이른바 ‘구글 신’의 시대다. 우리는 모든 걸 구글에 묻고, 구글은 모든 물음에 답을 준다. 간단한 길 찾기부터 대단히 전문적인 지식까지 대답한다.

몇 번의 클릭으로 모든 지식을 접할 수 있는 이런 시대에 학교는 인간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사실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과연 의미 있는 일일까?

이 책의 저자는 “무지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식보다 무지가 훨씬 중요하고 흥미로운 주제라는 것.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로 신경과학과 생명과학을 가르치는 그는 실제로 학교에 ‘무지’라는 제목의 강의를 개설하고 여러 분야의 과학자들을 초빙해 ‘그들이 모르는 것’에 대해 강단에서 이야기하게 했다. 매우 흥미롭게 진행된 그 수업을 토대로 쓴 이 책에서 지은이는 왜 우리가 무지에 주목해야 하는지 설명한다.

지식이 대답이라면 무지는 질문이다. 과학의 역사를 돌아보면 오랫동안 사람들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믿었던 지식이 시간이 지나면서 오답으로 밝혀진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과학은 언제나 수정되는 과정에 있다. 오늘날 우리가 최종적인 사실로 알고 있는 것 역시 언젠가는 오류로 밝혀질지 모른다. 또한 좋은 질문은 여러 층위의 대답들을 끌어내는 실마리가 된다. 질문 하나로 인해 완전히 새로운 탐구 분야가 만들어지고, 철옹성 같은 인간의 사고에 변혁이 일어나기도 한다.

저자는 “과학이란 캄캄한 방 안에서 검은 고양이를 더듬어 찾는 일과 같다”고 썼다. 동아일보DB
저자는 “과학이란 캄캄한 방 안에서 검은 고양이를 더듬어 찾는 일과 같다”고 썼다. 동아일보DB
저자는 지식 혹은 지식처럼 보이는 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무지를 보지 못하도록 가로막은 사례들, 그리고 인류가 질문의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얻은 중대한 발견들을 열거한다. 그 나열을 통해 과학이란 ‘캄캄한 방 안에서 존재하는지 알 수 없는 검은 고양이를 찾듯 무지를 더듬으며 나아가는 일’임을 보여준다. 우리가 무지를 겁내지 않고 적극적으로 활용할 때 무지는 한계가 아닌 기회로 작용한다. 트럼펫 연주자 루이 암스트롱은 “중요한 음은 연주하지 않은 음”이라고 말했다.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는 “지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는 누구나 자주 기약 없이 무지에 의지해야 한다”고 했다.

이 책은 주로 과학 이야기를 하지만 그 내용은 결코 과학 전공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물음과 호기심이 사라진 모든 교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자문하지 않는 우리 모두를 위한 책이다. 저자가 의도적으로 짧고 쉽게 쓴 덕에 과학 지식이 없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과학적 발견과 관련해 소개한 일화들도 흥미롭고, 반짝이는 경구들도 눈길을 끈다. 젊은 시절 연극계에 몸담았다가 서른이 넘어 대학에 진학해 학자로 변신한 저자의 독특한 이력 때문인지 인용에 끌어들인 인물의 면면도 다채롭다. 물리학자, 심리학자, 수학자, 코미디언 등 온갖 분야 인물이 등장한다. 그 낯선 이들 틈에서 비트겐슈타인, 러셀, 로댕 같은 귀에 익은 이름을 만나는 것도 반갑다.
 
백선희 번역가
#이그노런스#스튜어트 파이어스타인#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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