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짤 30년, 시장 움직이는 ‘보이는 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3일 03시 00분


매우 짧게 반복되는 연속 사진… SNS 통해 ‘황금 시장’으로 부활

《 ‘움짤’이 다시 뜬다. 단순한 재미, 패러디가 아니다. 시장을 움직이는 강력한 손으로 부활했다. 지난달 페이스북에는 작지만 혁명적인 변화가 생겼다. 글자나 이모티콘 대신 움짤을 검색해 바로 추가할 수 있는 ‘GIF’ 버튼을 댓글창에 신설한 것. 이 버튼을 누른 뒤 ‘행복해’ ‘배고파’ 같은 검색어를 쳐 넣으면 관련 움짤 수십, 수백 개가 뜬다. 더블클릭만으로 글 대신 움짤을 올릴 수 있다. 》
 
미국 ‘움짤’ 포털인 기피(GIPHY)의 메인 화면. 어려서부터 스마트폰을 쥐고 인스타그램, 스냅챗의 짧은 동영상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는 이곳에서 문자나 이모티콘 대신 자신의 감정을 찾아 움짤로 표현한다. 인터넷 화면 캡처
미국 ‘움짤’ 포털인 기피(GIPHY)의 메인 화면. 어려서부터 스마트폰을 쥐고 인스타그램, 스냅챗의 짧은 동영상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는 이곳에서 문자나 이모티콘 대신 자신의 감정을 찾아 움짤로 표현한다. 인터넷 화면 캡처
움짤은 ‘움직이는 짤방(잘림 방지)’을 줄인 말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게시글이 잘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진이나 영상을 올리던 것에서 유래했다. 매우 짧게 반복되는 연속사진이다. 움짤을 대표하는 파일 포맷인 GIF(Graphics Interchange Format)는 최근 마침 탄생 30주년을 맞았다.

움짤 시장은 미국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 중이다. 2013년 창립한 미국의 대표 GIF 포털 ‘기피(GIPHY)’는 기업 가치를 3년 만에 6억 달러(약 6870억 원)로 올려놨다. 4월 기준 하루 평균 약 2억 명의 사용자가 매일 20억 개의 움짤을 찾아 공유한다.

움짤과 인스타그램을 아예 콘텐츠에 녹인 아이유의 ‘팔레트’ 뮤직비디오와 트와이스, 드라마 속 이른바 ‘김치 싸대기’, ‘노 룩 패스’ 패러디 움짤(첫번째 사진부터 시계방향). 인터넷 화면 캡처
움짤과 인스타그램을 아예 콘텐츠에 녹인 아이유의 ‘팔레트’ 뮤직비디오와 트와이스, 드라마 속 이른바 ‘김치 싸대기’, ‘노 룩 패스’ 패러디 움짤(첫번째 사진부터 시계방향). 인터넷 화면 캡처
국내의 분위기도 뜨겁다. 5월 화제가 된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의 공항 ‘노룩 패스’ 움짤, 2015년 소셜미디어를 강타한 김애란의 ‘백세 인생’ 움짤은 인터넷 커뮤니티나 아이돌 팬덤 같은 소수의 ‘오타쿠’를 벗어난 대중적 폭발력을 보여줬다.

연예기획사들도 ‘움짤 마케팅’에 나섰다. 사심 없는 재미 추구에 머물던 팬들의 2차 가공 콘텐츠가 아니다. 4월 아이유가 발표한 ‘팔레트’ 뮤직비디오는 좋은 예다. 아예 영상 콘셉트와 기획의도의 중심에 움짤을 뒀다. 2, 3초 간격으로 빠르게 바뀌는 화면과 아이유의 짧은 움직임과 표정은 ‘Palette’ 같은 텍스트나 인스타그램 화면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가요 홍보대행사 포츈엔터테인먼트의 이진영 대표는 “요즘 기획사들의 공식 콘텐츠에는 움짤을 넣거나, 기획 단계부터 콘텐츠를 팬들이 움짤로 재가공하기 좋은 형태나 길이로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짧고 재밌는 콘텐츠가 무한히 널린 인터넷 환경에서 긴 동영상의 매력이 점차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움짤은 길이가 수 초로 짧아 소비와 공유의 속도 모두 동영상에 비할 바 없이 빠르다. 무한히 자동 반복되므로 편리하고 10번, 20번 보는 중독성이 있는 데다 10, 20대가 민감해하는 휴대전화 데이터 소비 걱정도 없다.

요즘 5, 6초짜리 치킨, 배달음식 광고도 인기다. 움짤은 ‘눈 깜짝 광고’ 시장에서 최상의 콘텐츠다. ‘기피’는 움짤을 클릭하면 해당 상품의 구매로 이어지는 식으로 수익 모델을 구축한다. 맥도널드와 협의해 연예인이 우스꽝스럽게 햄버거를 탐식하는 움짤을 기획·제작한다. 소비자가 카카오톡, 페이스북에 친구가 공유한 움짤을 클릭하면 맥도널드 주문 페이지로 넘어가는 식이다.

국내에도 움짤 전문 업체가 나타났다. 스타트업 ‘베리잼(Vryjam)’은 이르면 다음 달 정식 서비스를 오픈한다. 베리잼 관계자는 “아이돌 가수 등 한국 시장에 맞는 움짤 콘텐츠를 최대한 확보해 풍성한 움짤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했다.

움짤이 커지면서 사회적 기능도 재정의된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움짤 콘텐츠는 최근 국정 농단 사태를 계기로 새로운 맥락과 힘을 더했다”면서 “유명인 엽기 콘텐츠에 머물던 움짤에 풍자적 기능과 저항정신이 더해지며 현실적이고 독자적인 메시지를 지닌 하나의 미디어로 부상했다”고 말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움짤#gif#노룩 패스#베리잼#vryj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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