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땀의 정직함 영화에 담았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7일 03시 00분


2년간 세계일주 농업다큐 영화 ‘파밍보이즈’의 세 주인공

유럽 등 12개국 35개 농장 방문…현지 젊은이들과 일하며 고민 나눠
“농사 힘들어도 우리 하기 나름공무원 준비-토익공부 그만합시다”

다큐멘터리 ‘파밍보이즈’의 주인공인 세 사람은 “낯선 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2년 가까이 생활하려니 몸과 마음이 힘들었지만 결코 
헛되지 않았던 값진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권두현, 김하석, 유지황 씨(왼쪽부터)가 세계일주를 하며 만든 구호인 ‘페이백(pay 
back·자연에서 받은 만큼 돌려주자는 의미)’을 외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다큐멘터리 ‘파밍보이즈’의 주인공인 세 사람은 “낯선 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2년 가까이 생활하려니 몸과 마음이 힘들었지만 결코 헛되지 않았던 값진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권두현, 김하석, 유지황 씨(왼쪽부터)가 세계일주를 하며 만든 구호인 ‘페이백(pay back·자연에서 받은 만큼 돌려주자는 의미)’을 외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농사지으믄 장가 못 간다카든데…. 에이, 한번 가보자 그라믄!”

남들은 한창 취업 준비에 매진할 나이, 평범한 경상도 사나이 셋이 맨손으로 ‘세계 농업일주’를 떠났다. 평생 농사만 지은 부모님이 “농사만은 안 된다”며 입버릇처럼 말해왔다는 권두현(29), 시골 농기구 상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던 김하석(29), 공대 출신으로 농기구 전문가를 꿈꾸던 유지황 씨(30)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2013년부터 2년간 인도네시아 호주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 등 12개국 35개 농장을 돌아다니며 농업 현장에 뛰어들었다. 나무판으로 얼기설기 세워놓은 산속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고된 일을 해 여행경비를 버는 ‘눈물 나는’ 경험담은 13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파밍보이즈’에 고스란히 담겼다.

“농기구 판매 아르바이트를 할 때 물건 사러 오는 분이 전부 70대 어르신인 거예요. 어쩌다 가끔 오는 젊은 손님은 아드님이 심부름 오는 정도고요. 끝이 안 보이는 공무원 시험이나 취업 준비 말고 ‘농업’에 도전해 보면 어떨까 싶었죠. 고민 끝에 일단 외국 농업 현실은 어떤지 보고 배워 오자며 무작정 떠난 거죠. 겁도 없이.”(김하석)

다큐멘터리 ‘파밍보이즈’에서 세계일주 도중 가문 농장에 비가 오자 신이 난 세 사람. 영화사 진진 제공
다큐멘터리 ‘파밍보이즈’에서 세계일주 도중 가문 농장에 비가 오자 신이 난 세 사람. 영화사 진진 제공
잘 씻지도 못해 ‘꾀죄죄한’ 모습이 영화에 그대로 담겨 창피하지만 경험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 영화 제작에 응했다는 게 그들의 얘기다. 유지황 씨는 “사실 일하기도 바빴지만 감독님들과 함께 작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틈틈이 영상을 찍었다”며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우리끼리 촬영한 뒤 지역 방송국 시청자 참여 코너에라도 출품해 볼 생각이었는데 다행히 영화로 만들어져 기쁘다”고 말했다. 변시연, 장세정, 강호준 세 명의 감독이 이들과 함께 완성시킨 영화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에서 상영돼 주목받았다.

영화에서 3인방은 취업난 탓에 농업으로 눈을 돌린 이탈리아 젊은이들을 만나 함께 농업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벨기에에서는 농부와 소비자들이 어우러진 지역의 농장 네트워크를 체험한다. 또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면 땅을 무료로 빌려주는 농장주를 만난 뒤 “나도 농사일을 하게 되면 똑같이 베풀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한다.

우여곡절 많았던 세계 일주가 끝난 뒤 한국으로 돌아온 세 사람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농업에 뛰어들었다. 가업인 딸기 농사를 물려받은 권 씨는 “처음엔 농사를 지을 줄 몰라 헤맸지만 올해는 부모님이 하지 못한 역대 최고치 매출액을 기록했다”며 “앞으론 유럽에서 배운 대로 농사에 관심 있는 청년들을 위한 농지 제공 프로젝트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유지황 씨는 젊은 농부 지망생들에게 집을 마련해주는 이동형 소형주택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김하석 씨는 농산물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 주겠다는 목표를 안고 생활협동조합 매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고시촌, 토익학원 말고 농촌 같은 현장에도 젊은 또래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영화를 찍은 가장 큰 이유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진로를 고민 중인 청소년과 시골 어르신들을 찾아가서라도 이 영화를 보여드리고 싶어요.”(유지황)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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