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부드러운 ‘힐링 방송’ 거듭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7일 03시 00분


거칠고 무거운 시사 일변도 탈피
‘오디오 진정제’ ‘책 읽는 시간’ 등
낭독-인문학 주제로 인기몰이

낭독 팟캐스트 ‘오디오 진정제’의 진행 및 기획을 담당하는 배창복 이상협 KBS 아나운서와 연출을 맡은 김홍범 KBS 라디오 PD(왼쪽부터).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낭독 팟캐스트 ‘오디오 진정제’의 진행 및 기획을 담당하는 배창복 이상협 KBS 아나운서와 연출을 맡은 김홍범 KBS 라디오 PD(왼쪽부터).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아나운서의 중저음 목소리와 정확한 발음이 귀를 호강시킨다. 하지만 방송을 듣고 있으면 웃음을 참기 힘들다. 고급스러운 목소리와 대비되는 다소 황당한 내용이 계속해서 흘러나오기 때문. “최근 법원에 개명을 신청한 명단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신난다, 경운기, 제대로, 피바다, 하지만, 임신중….”

올 4월부터 방송을 시작한 팟캐스트 ‘오디오 진정제’에서 ‘무엇이든 읽어보세요’라는 주제의 코너다. 이 팟캐스트는 KBS의 배창복, 이상협 아나운서가 기획·진행을 맡고 있다. 마을버스 노선부터 라면 제조법, 의왕구치소의 식단까지 말 그대로 무엇이든 읽어준다. 배 아나운서는 “다큐멘터리 내레이션과 라디오에서 클래식 프로그램 진행을 오래해 온 편이라 목소리가 중심이 된 방송을 해보고 싶었다”며 “우연히 사내 공모에 당선돼 아무거나 읽어드리게 됐다”고 말했다.

반응은 폭발적이다. 국내 최대 팟캐스트 포털 ‘팟빵’의 문화·예술 분야에서 5월부터 현재까지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인기의 이유는 목소리와 내용의 괴리에서 오는 ‘반전’의 역할이 크다. 이 아나운서는 “진중한 말에서 나오는 권위를 역으로 이용한 ‘낭독의 역설’이 새로운 유머 코드로 작용한 것 같다”고 밝혔다.

시사·정치 분야의 막말 방송이 난무하던 팟캐스트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낭독을 주제로 한 부드러운 팟캐스트 방송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 tvN ‘알쓸신잡’ 등에 출연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김영하 작가의 ‘책 읽는 시간’, 각종 시를 낭독해주는 ‘시와 시 사이, 시간’ 등 낭독을 주제로 한 팟캐스트만 10여 개에 달한다. 올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촛불, 탄핵, 대선 정국으로 인해 시사·정치 관련 팟캐스트 채널이 가장 인기를 끌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양상이다. 김은영 대중문화평론가는 “지난해 불거진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이후 대부분의 뉴스 주제가 무거운 소재로 흘러가 대중이 피로감을 느낀 측면이 있다”며 “낭독과 인문학의 코드를 활용한 오디오 콘텐츠가 주는 힐링 효과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낭독이 대중문화의 새로운 흥행 코드로 떠오르면서 포털 사이트 등에서도 이를 활용한 서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네이버는 올 1월부터 ‘오디오 클립’이란 서비스를 신설해 운영 중이다. 6개월 만에 120여 개 채널이 운영돼 정식 서비스로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잔잔한 음성이 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 등 음성 콘텐츠의 활용법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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