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을 가장 좋아하는 시민들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대상은 사실 그의 인격과 행위가 아니라 그 시대를 통과하면서 시민들 자신이 쏟았던 열정과 이루었던 성취, 자기 자신의 인생일 것이라고 나는 추측한다.―‘나의 한국현대사’(유시민·돌베개·2014년) 》
할머니 댁은 논밭 사이로 비포장 길이 가로놓인 벽촌이었다. 시골집 안방의 자개 이불장에선 흙냄새가 났다. 명절이면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와 아버지는 엄마들이 쉴 새 없이 나르는 안주 접시를 비우며 밤새 토론을 벌였다. 5년 전 언저리로는 그런 자리에 제법 흥이 붙는 듯했다. “인쟈 박근혜가 되믄 여기도 빛이 좀 안 보이겠나?”
친가와 외가가 소위 ‘TK’(대구경북) 출신인 나는 대학과 사회에 나와서야 내 이마에 붙은 TK 딱지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내가 원치도, 결정하지도 않은 딱지였다. 머리가 좀 굵어지고 나서부턴 끊임없는 아버지와의 투쟁이었다. 지역감정이 뭔지, 정권이 뭔지, 데모가 뭔지, 아버지가 말하는 사사건건에 대해 나는 반발하고 따져들곤 했다.
현대사는 현재 진행 중인 역사다. 아직 평가가 완료되지 않은 역사다. 게다가 한국의 현대사는 그 어느 현대 국가에 뒤질 것 없이 다이내믹하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렇기에 길든 짧든 이 시대의 한국 사회를 사는 저마다 ‘나의 한국현대사’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59년생 돼지띠인 유시민 씨가 본 한국현대사다.
저자는 역사 속에서 겪은 일들을 종횡으로 엮어 무림소설처럼 펼쳐 놓고 있다. 조개탄을 퍼 와서 교실 불을 때고 옥수수빵 배급을 받고 전파상 텔레비전에서 고교 야구를 보는 저자의 모습이 어머니 아버지처럼 친근하다가도, 이승만부터 박근혜까지 역대 정부의 치적과 그늘을 평가하는 부분은 정신을 번쩍 들게 할 만큼 이성적이다.
젊은 연령대의 독자에게 59년생 돼지띠가 본 한국 현대사를 요란스럽지 않게, 담담하게 공감시킨다는 것이 장점이다. 책을 덮고 나서도 여전히 한국 현대사는 정치 갈등과 세대 차이와 좌우 논쟁이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몸소 겪어 보지 못한 윗세대의 궤적을 가늠해볼 순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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