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의 바둑은 웹툰 ‘미생’이나 인공지능(AI) 알파고로 친숙하지만, 바둑계를 빛내온 이들은 투혼의 프로 기사들이다. 많은 이름 중에도 조치훈은 ‘목숨을 걸고 둔다’는 집념의 기사다. 교통사고 뒤에도 대국을 포기하지 않고 휠체어에 탄 채 돌을 집었던 그이다.
‘일본에서 활약 중인 프로기사 조치훈 9단이 일본기계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혼인보(本因坊) 타이틀을 10연패하는 신기록을 세웠다.’(동아일보 1998년 7월15일자)
1998년 7월14일, 일본 이바라기현 후쿠로다 온천호텔에서 이틀째 열린 제53기 혼인보전 의 7번기 제6국에서 조치훈은 도전자 왕리천을 154수만에 백 불계로 꺾었다. 이로써 조치훈은 1989년 획득한 혼인보 타이틀을 10연패 획득하면서 일본 신기록을 수립했다. 혼인보전은 메이진(名人), 기세이(棋聖)전과 함께 일본 3대 기전으로 꼽히며 이 셋을 동시에 차지하는 것을 대삼관(大三冠)이라고 부른다.
조치훈은 여섯 살 때 일본으로 바둑 유학을 떠나 만11세에 당시 일본 최연소로 입단했다. 1980년 3대 기전 중 메이진을 따내 정상급 기사가 됐고 1983년에는 대삼관의 위업을 달성했다. 일본 바둑의 천하 통일을 이룬 셈이었다. 그는 1996년에도 대삼관의 천하 통일을 한 번 더 이뤘다.
1998년 혼인보 10연패를 기록한 것은 대삼관 3년 방어를 앞뒀을 때였다. 동아일보는 조치훈의 혼인보 제패 소식을 전한 다음날 ‘경제 위기로 지친 국민에게 큰 위안을 주는 청량제가 아닐 수 없다’면서 ‘3년 연속 대삼관의 주인공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썼다(1998년 7월16일자). 바람대로 그는 그해 11월12일 ‘일본 메이진 타이틀 방어로 대삼관 3년 연속 방어에 성공하는 신기원을 이룩했다.’(동아일보 1998년 11월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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