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 근대문학사를 공부하는 한 사람으로 당국의 월북작가 해금조치를 환영한다.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싶다. 이런 조치를 가지고 때늦은 감이 있다든지 시기상조라든지 또 무엇 무엇이란 토를 다는 일은 슬기로운 처사가 아닐 줄 안다. 대개 민족이나 역사에 관련된 일이란 요란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먼 그런 종류의 사업이라 믿기 때문이다.”(동아일보 1988년 7월 20일자 중)
1988년 7월 19일 월북 문인 해금조치가 발표된 직후 김윤식 서울대 교수의 반응이었다.
앞서 7월 10일 '백 투 더 동아'에서 소개했던 소설가 박태원의 이름이 온전하게 복원된 계기였다. 그 뿐 아니라 ‘문장 강화’의 작가 이태준, ‘그리움’의 시인 이용악 등 120여 명의 작품이 출판 제한에서 풀렸다. 연구가 활발해졌고 단행본도 발간됐다. 가려졌던 문인의 작품들을 대중들이 만나게 됐다.
최근 시집 초판 복간본 ‘사슴’이 화제를 모으는 등 독자에게 사랑받아온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시인 백석도 이때 해금됐다.
그해 10월에는 월북 작곡가와 미술인에 대한 해금조치가 단행됐다. “우리 문화예술의 지평이 그만큼 넓어졌다는 데 의의가 있는”(동아일보 1988년 10월27일자) 한해였다. 김지영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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