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운지를 울리던 스타일 좋은 일렉트로닉 팝 음악들이 화장실까지 쫓아 들어온다. 적당한 음량. 스타일은 유지하되 흐트러지지 않는 스마트 캐주얼 같다. 최근 찾은 서울 중구 삼일대로 ‘위워크 을지로점’은 키보드와 프린터 소리만이 정적을 깨는 여느 사무실과 달랐다.
이곳은 을지로의 한 건물 10개 층을 확보해 올 2월 문 열었다. 소규모 회사 200여 개가 사무실과 휴식용 라운지를 공유한다. ‘위워크’는 2010년 미국에서 출발한 일종의 공유 오피스. 을지로점은 15개국 45개 도시에 있는 149개 지점 중 아시아에서 첫 번째,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크다. 이곳 모토는 ‘크리에이터를 위한 플랫폼’이다.
최근 문화 관련 스타트업들이 여기로 몰려든다. 오픈한 지 겨우 5개월 됐지만 입주하는 문화 콘텐츠 회사의 면면이 범상치 않다. 가수 작가 화가 연극인이 애용하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 패션 웹진 ‘하입비스트 코리아’, 아트·영상 에이전시 ‘디어뮤즈먼츠’, 한복 대여업체 ‘한복남’, 움짤 전문업체 ‘베리잼’, 일반 가정을 공연장으로 활용하는 ‘소파 사운즈’, 음악 전문 콘텐츠 네트워크 컴퍼니 ‘스페이스오디티’….
첨단 문화 크리에이터들이 책상을 이리 옮긴 이유는 뭘까. 8층과 16층 라운지에서 염탐에 들어갔다. 입주자에게 밤낮 제공되는 맛 좋은 커피, 차, IPA 생맥주가 일단 혼을 뺐다. 은퇴 후 창업한 정장 차림 70대 노신사, 스냅백 모자에 반바지, ‘쪼리’ 차림의 20대 창업가가 한 시야에서 오간다. 카페나 바를 닮은 이곳에서 그들은 노트북컴퓨터를 만지작거리거나 업무 미팅에 한창이다. 쉼터이자 회의실, 영감과 정보가 교차하는 멜팅 폿(melting pot)인 셈이다.
라운지는 가끔 쿵쿵대는 전자음악과 가벼운 춤이 섞이는 파티장으로 돌변한다. 지난 5개월간 네 차례 ‘네트워킹(교류) 파티’가 열렸다. 입주 업체 간의 ‘얼음벽’을 깨는 집들이 또는 환영회. 업체들의 십시일반 재능기부로 파티가 완성된다. 디어뮤즈먼츠는 픽셀 아티스트 주재범 씨를 데려다 파티 참가자들의 픽셀 초상화를 그려줬다.
파티가 열리면 ‘베리잼’의 이진섭 이사는 ‘DJ 모범(Morebomb)’으로 변신한다. 해외 클럽에서 디제잉 한 경험을 살려 지난달 그랜드 오프닝 파티 때는 ‘워크 하드 플레이 하드(일도 놀이도 열심히)’라는 콘셉트로 선곡해 3시간 넘게 1300명의 흥을 돋웠다. 그는 위워크에 대해 “다양한 일을 하는 다양한 사람이 칵테일처럼 섞여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는 곳”이라고 했다.
한복 대여라는 특성상 종로구 삼청동에 본사를 둔 한복남의 박세상 대표는 한 달 전 책상을 여기로 옮겼다. “일반적인 사무실에서 일하다 보면 벽이나 컴퓨터만 보다 퇴근하는 날이 많은데 여기선 대면 소통이 늘었어요.”
스페이스 오디티의 김홍기 대표는 가수 헤이즈의 새 앨범을 전시로 풀어낸 ‘스펙트럼 오브 헤이즈’전을 입주업체 디어뮤즈먼츠의 최찬영 대표와 머리를 맞대 풀어냈다. 그는 “자유롭게 소통하는 분위기가 막연한 아이디어를 업체 간 협업으로 연결시킨 셈”이라고 했다. 입주 업체 텀블벅의 염재승 대표는 “전에 있었던 홍익대 앞은 겉보기엔 핫하지만 기업문화를 느낄 순 없었다”고 했다.
“치열하게 섞이며 정보와 에너지를 주고받는 분위기랄까, 클럽이 들어찬 홍익대 거리에서도 얻지 못한 영감을 여기서 받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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